“국회에서는 ‘국민이 주도하는 헌법 개정’이라고 강조하는데 실제로는 ‘국민 없는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9일 오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부산시·울산시·경남도 공동 주최 헌법 개정 국민대토론회가 열린 부산시청 대회의실. 지정 토론자로 나선 최상한 경상대 행정학과 교수가 이같이 말하자 내내 조용했던 방청석에서 처음으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개헌특위가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이뤄지는 개헌을 모든 권력의 원천이자 개헌의 주체인 국민과 함께 달성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내걸고 약 한 달 동안 11차례에 걸쳐 진행하는 전국 순회 토론회의 첫 테이프를 끊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 같은 청중의 반응은 정치권이 개헌에 대한 의욕만 넘칠 뿐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준비가 덜 됐음을 보여줬다.

행사 시작 전부터 불안한 전조가 있었다. 토론회에 참석하려는 시민들이 대거 몰리는 바람에 부산시청 대회의실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애초 개헌특위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200명의 시민을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일반 시민을 위해 배정된 자리는 120석 정도였다. 입장하지 못한 시민 수십 명은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울산에서부터 왔다는 한 시민은 “이럴 거면 왜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토론회를 한다고 공지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토론 진행 방식도 부실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초안이든 복수의 안이든 뭔가가 있어야 토론이 될 텐데 국회에서 그냥 ‘고민하고 있다’고만 하면 되느냐”라고 질책했다.

개헌특위에 따르면 국민 원탁회의와 대국민 설문조사는 각 당의 이견으로 무산될 처지다. 전국 순회 토론회가 여론을 반영할 거의 유일한 창구인 셈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의 모습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은 요원해 보였다.

부산 = 이후연 정치부 기자 lee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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