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섭 강원대 사범대 교수

2021학년도 수능 개편 발표를 하루 앞두고 찬반 양론이 뜨겁다. ‘4과목을 절대평가할 것인가’(1안) 아니면 ‘전 과목을 절대평가할 것인가’(2안)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절대평가의 타당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논란은 의미가 없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오십보백보다. 그러나 수능이 또 바뀐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1994년에 도입된 수능의 시험 방식과 과목은 수십 차례 바뀌었다. 어떤 제도도 도입 당시 완벽할 수는 없어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수십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제도라면 폐지해야 마땅하다.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전면 도입은 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그는 공약에서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 ‘대입 제도의 단순화와 공정성’ ‘학교교육 정상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발맞춰 수능 절대평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정 개정이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를 수반하는 것도 아니며, 절대평가를 하면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고, 상대평가를 하면 비정상화되는 것도 아니다. 절대평가를 해야 대입 제도가 단순화하거나 공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절대평가와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는 무관하다.

그런데도 절대평가로 변별력이 약해진 수능만을 사용해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하도록 강제한다면, 그것은 대학입시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학생 선발에 여러 요소가 작용하는 한 그런 효과는 없다. 그나마 공정하다고 평가받는 수능의 역할이 약해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나 내신 등 그 밖의 전형 요인들의 비중은 가중된다. 공약에 따라 내신도 절대평가(고교 성취평가제)로 바뀐다면, 다른 전형 요소의 비중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사교육은 증가하고 공정성은 약해진다. 따라서 ‘학생들의 무한경쟁과 과도한 시험 부담을 완화하면서 창의·융합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교육부가 제시한 절대평가의 원래 목적은 달성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수능은 대학의 학생 선발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변별력이 생명이다. 절대평가는 그 생명을 끊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수능’이라는 줄임말이 보편화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본 이름이 자취를 감췄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修學)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런 시험이라면 국가가 아니라 대학이 주관해야 한다. 대학이 요구하는 ‘수학능력’은 대학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판단은 대학이 해야 마땅하다. ‘수능’의 본래적 기능을 고려하면 평가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대학이 돼야 한다. 굳이 국가가 나서서 ‘대학수학능력’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면, 수능의 변별력을 포기하고 대학 응시자격 시험으로 변경하는 편이 낫다.

지금 정부가 수능을 절대평가제로 바꾸는 명분으로 제시한 모든 것은 중·고등학교, 대학 등 여러 교육기관에 자율성과 선택권을 부여하면 달성 가능성이 가장 크다. 현재 ‘교육 적폐’의 온상은 바로 국가다. 국가가 교육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면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개성이 꽃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교육부는 수능 과목 가운데 몇 과목을 절대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아닌 문제’로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 전적으로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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