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서가 국내 번역되면서 저작권자가 번역자의 ‘해설’이 한마디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조건을 내걸어 아예 번역자가 주저인 번역서와 동시에 해설서를 출간하는 보기 드문 사례가 나왔다. 그린비출판사가 최근 펴낸 4차 산업혁명기의 주목받는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1924∼1989)의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와 이 책을 번역한 현대 프랑스 철학 연구자인 황수영 홍익대 교수의 ‘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가 이들 책이다.
보통 번역서에는 저자의 생애와 사상의 개요, 책의 구성에 대한 설명, 참고문헌 등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관례다. ‘옮긴이의 말’은 대부분의 번역서 말미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시몽동의 책은 저작권자가 아주 상세하고 엄격한 조건을 제시했다. 시몽동의 저작권을 가진 그의 가족은 역자 서문이나 에필로그를 통해 내용 요약이나 철학자의 사상 소개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역자의 해석이 들어간 일체의 각주(脚註)도 허용하지 않았다. 번역서에는 ‘옮긴이주(註)’도 적지 않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번역자 황 교수는 “저작권자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번역된 용어들의 의미나 뉘앙스의 애매함을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일부 옮긴이주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고 동의를 받아 간략한 ‘옮긴이주’는 책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몽동의 이번 책은 국내에서 첫 번역(일부는 번역)인 데다 스페인어에 이어 두 번째 완역될 만큼 아직 국제적으로도 용어 정리 등이 돼 있지 않고, 내용도 쉽지 않다. 황 교수는 “제한된 옮긴이주가 해설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번역이 진행되면서 옮긴이주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해석도 첨가돼 질과 양의 측면에서 저작권자와의 계약조건을 넘어서게 된 것. 황 교수는 “옮긴이주 중에서 간단한 용어설명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내용을 분리해 아예 해설서로 내게 됐다”고 밝혔다. 주저 번역서가 656쪽인데, 해설서도 232쪽에 달할 정도다. 황 교수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프랑스 철학 연구자이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시몽동은 현대의 생성형이상학과 기술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 현대철학의 거두들도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근래 ‘인공지능 시대의 철학자’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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