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영국의 역사학자 프랭크 트렌트만은 이렇게 선언하기에 이른다. 현대인은 매일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살아가며,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어쩌면 소비는 생산보다 우리 삶과 더 밀접한 것이 돼 가고 있다. 이처럼 소비가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고, 나아가 규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됐음에도 상대적으로 주목받거나 진지하게 연구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욕망과 쾌락, 사치와 방탕이라는 도덕적 통념에 소비라는 단어가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생산적 관계’라는 말과 ‘소비적 논쟁’이 가진 어감을 대조해 봐도 소비에 부정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사가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비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내밀하고 다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현대의 몫이 됐다. 2000년대 들어와 폭증하기 시작한 ‘소비사’ 연구의 몫은 인간 역사를 가장 내밀하게 분석하며 사람과 일상이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860년대 남성 정장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패션 삽화(왼쪽 사진)와 에이본사가 창립 75주년을 맞아 내놓은 광고. 휴머니스트 제공
소비하는 인간을 탐구하기 전에 소비가 가진 개념부터 다시 보자.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쓰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물건에 대한 상상력과 관계 맺기·이데올로기·구별 짓기 등 비물질적 요소를 포함한다. 소비를 촉진하는 다양한 장치들, 즉 판매나 마케팅, 광고 등을 포괄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소비는 특히 소비자의 욕구와 소비 공간, 낭비와 재활용까지 초점을 맞춰 그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책이 ‘굿즈’(Goods·욕망하다), ‘세일즈’(Sales·유혹하다), ‘컨슈머’(Consumer·소비하다), ‘마켓’(Market·확장하다), ‘보이콧’(Boycott·거부하다) 등 5가지 요소에 따라 소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책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상품의 역사는 물론 약장수와 방문판매, 백화점과 쇼핑몰 같은 근대적 판매 방식과 공간의 역사도 함께 살핀다. 화장품 방문판매의 원조인 ‘에이본 레이디’를 통해 여성들의 일상적인 네트워크에 따른 소비활동과 그 성과를 다룬다. 최초로 가정용 기계의 대량판매를 이뤄낸 싱어사의 재봉틀을 통해 ‘1달러에 계약하고, 1주일에 1달러 내기’와 같은 할부제의 태동과 이것이 미래 구매자의 소비 패턴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식이다.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상품이나 불매운동 등을 통해 소비의 이면에 숨겨진 저항과 해방, 연대의 역사를 들춰내기도 한다. 흑인에게도 백색신화를 전파한 하얀색 비누, 제국주의적 편견이 담긴 트레이드 카드 등을 통해 쉽게 소비되는 상품에 담긴 식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노예제 폐지의 일환으로 일어난 설탕거부운동과 흑인들의 불매운동, 미국의 국산품애용운동은 소비를 저항이나 연대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기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 책은 병적 도벽, 성형 소비, 노년층의 소비 문제 등 주변부에 놓인 소비 행위도 다루면서 우리에게 풍성한 읽을거리를 선물한다. 496쪽,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