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탁 연세대 명예교수 교육학

지난 8월 3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문화 분야 정책 토의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교육 문제로 과도한 입시 경쟁과 심해지는 교육 격차의 해소를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입시제도는 단순하고 공정하다고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이 현안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교육을 더욱 패리(悖理)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정책이라는 사실이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내놓은 정책 가운데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대표적인 정책이 ‘수능 절대평가’와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의 학생 우선선발 제도를 폐지하고 일반고와 똑같은 시기에 하겠다는 안(案)이다.

한번 따져보자. 수능(修能)은 글자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따라서 일정한 학업성취 수준에 도달한 학생들에게 대학수학능력을 인정해줌으로써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시험 제도로 정착했어야 했다. 처음의 뜻은 그러했다. 그러나 실시 과정에서 수능은 변별력을 높여 점수 차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대학입시 제도로 변질됐다. 그 폐해가 엄청나다. 그래서 정부는 수능을 절대평가 제도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역시 엄청난 저항에 부닥쳤다.

수능은 앞에서 말했듯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어야 한다. 교과서 내에서 출제하고 절대평가해 일정한 점수 이상을 획득한 학생들에게 대학수학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대학 지원 자격을 주는 제도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학생들은 맹목적 입시 경쟁의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사실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는 ‘변별력’으로 그렇게 강조하는 점수 차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학생의 의지, 동기, 관심, 인생관과 세계관, 가정환경, 훌륭한 선생과의 만남 같은 것들이 학업 성취를 결정한다. 그래서 세계의 명문 대학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 학생의 잠재 가능성을 따져 학생을 선발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수능을 학생 선발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차제에 문 정부도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자사고가 학생 선발을 일반고와 똑같은 날짜에 하도록 함으로써 학생 선발의 우선권을 없애겠다는 정책은 일면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좋은 제도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평준화 정책의 확대로 이어져 고등학교 교육의 질을 보편적으로 평둔화(平鈍化)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걸맞은 ‘4차 교육혁명’을 통해 성공적으로 국력을 제고하고 일자리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서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화두는 창의성과 융합, 다양성과 독창성, 규제 철폐와 개방성 등이다. 우리 사회는 관계중심사회다. 이를 능력중심사회로 바꾸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학생의 관심과 성취에 따라서 잠재능력을 다양하게 최고의 수준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학교를 다양화해야 한다. 다만, 학교의 특성이 입시 경쟁의 무기로 사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면서 말이다. 그런 때에 교육 격차는 교육 특성으로 바뀌고 온갖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뛰어난 학생들이 모든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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