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남선면 12개 마을에서 모인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장수사진 촬영을 위해 양복과 한복으로 갈아입고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경북 안동시 남선면 12개 마을에서 모인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장수사진 촬영을 위해 양복과 한복으로 갈아입고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10) 경북 안동으로 달려간 ‘행복버스’

처서를 넘기고도 30도가 넘는 더위가 맹위를 떨친 지난달 25일 경북 안동. 안동시청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남선면사무소에는 아침부터 10여 대의 자가용이 들고 나고 하기를 반복했다. 들 때마다 4~5명의 어르신이 차에서 내렸다. 무료 의료 검진과 장수(영정)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남선면 12개 마을에서 온 어르신들이다. 도서·사각 지역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종합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업인 행복버스’ 사업이 이날 경북 안동농협 주관으로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안동농협은 애초 45인승 대형 ‘행복버스’로 마을을 돌며 어르신들을 모셔올 계획이었으나 이날 버스는 멈춰서 있었다.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좁아 운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경북 안동농협 영농회장들과 마을지도자 30여 명이 자가용으로 어르신들을 실어날랐다. 이날만큼은 ‘농업인 행복승용차’였다. 어르신들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안동농협 관계자는 “관내 65세 이상 어르신 400여 명 중 적어도 300명 이상은 오늘 혜택을 받게 하는 게 목표”라면서 “온종일 마을로 어르신들을 모셔오고 바래다 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수사진 촬영장이 마련된 면사무소 한쪽의 보건소 건물은 출입구부터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르신들은 고운 색감의 한복을 차려입고 전문가의 머리 손질과 화장 손길을 거치며 사진 촬영 순서를 기다렸다. 이분하(81) 할머니는 “주민등록 사진을 촬영한 이후 독사진은 처음 찍는다”며 곱게 화장한 얼굴을 자꾸 거울로 들여다봤다.

“아버님, 여기 보세요. 웃으시니까 청년 같으시네(웃음)”라는 사진사의 말에 박모(82) 할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 사진을 찍은 어르신들은 연신 “고맙다”는 말로 봉사자들에게 마음을 전했다. 어르신들은 “시내에 나가지 않는 이상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는데 액자에까지 넣어주니 너무 좋고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로 4년째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을 맡은 ‘딘 스튜디오’ 관계자는 “디지털화되면서 사진관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매번 서울에서 와야 하지만 매우 보람차다.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병원 의료진이 어르신의 의료 검진을 위해 혈액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경북대병원 의료진이 어르신의 의료 검진을 위해 혈액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면사무소 2층에선 의료 검진이 진행됐다. 경북지역 최대 규모인 경북대병원 의료진 30여 명이 이날 진료에 참여했다. 경북대병원은 2012년부터 횟수로 23회째 농촌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진료는 어르신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신경과 △내과 △정형외과 △안과 △가정의학과 △피부과 △예방의학과 등 7개 과에서 진행됐다. 안동농협 관계자는 “비번(非番)이지만 자진해서 자원봉사에 참여한 의료진”이라면서 “모두 경력 많은 전문의로만 구성됐다”고 귀띔했다.

1층 혈압검사를 시작으로 혈액·소변 검사를 거치면 2층에서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됐다. 어르신들은 신체 계측(몸무게, 허리둘레 등) 후 전문의들과의 상담을 통해 불편한 부분에 대한 진료를 받았다. 검진 후엔 치료 약까지 바로 처방돼 실질적인 치료 효과도 볼 수 있도록 했다. 혈액검사 결과 등은 향후 농협 조합 담당자에게 전달해 필요하면 연계치료도 가능하도록 지원한다고 한다.

올해로 3번째 농업인 행복버스 의료 검진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김건엽 경북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 실장은 “이렇게 나와서 진료를 보면 평소에 병원을 자주 못 오는 어르신들의 병도 치료할 수 있지만, 같이 대화를 하면서 어르신들이 마음의 안정도 찾는다”면서 “경북대 의대가 국립대병원인 만큼 공공의 역할을 많이 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지속해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정호영 경북대병원장과 여영현 경북농협 본부장이 직접 행사장을 찾아와 의료진과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장필자(77) 할머니는 “병원 진료는 10년 만에 처음”이라면서 “허리랑 무릎이랑 엉치뼈가 아팠는데 직접 와서 치료해주니 너무 감사하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날 접수는 오후 3시 마무리됐지만, 의료 검진과 장수사진 촬영은 오후 5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이날 면사무소를 찾은 어르신은 목표치를 훌쩍 넘긴 400여 명에 달했다. 경북농협 관계자는 “어르신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면서 “다양한 사업을 통해 문화·복지 사각지대인 농촌 지역 주민과 농업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 농업인 행복지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안동 = 황혜진 기자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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