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태 한국전력 과장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경기 광주시 초월읍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요양 시설인 한사랑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송화태 한국전력 과장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경기 광주시 초월읍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요양 시설인 한사랑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송화태 한전 과장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으로, 30여 년간 1억 원이 넘는 불우아동 후원금을 낸 아버지.’

내 아버지가 이런 분이라면 어떨까. 오래된 노랫말에 나오는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처럼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멋쟁이 아빠’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력 광주·전남지역본부에서 근무하는 송화태(58) 과장이 바로 그런 ‘멋쟁이 아빠’다. 송 과장이 처음 불우아동을 돕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전에 입사, ‘생활 전선’에 뛰어든 송 과장은 1985년 결혼과 함께 자녀를 한 명 낳은 뒤 부인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아이를 하나 입양하자는 약속.

“당시 정부 시책이 소위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아이는 한 명만 낳았는데, 아이가 외로워하면 입양을 하자고 집사람과 약속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고아를 해외에 입양시키는 일이 많이 진행되었어요. ‘고아 수출’이나 마찬가지인 해외 입양이 너무 싫었습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을 왜 우리가 책임지지 못하고 ‘수출’을 하느냐고 말이죠.”

송 과장은 그렇게 젊을 때부터 “사회문제에 강한 책임 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 입양아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보도되면서 입양에 대한 부인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뀐 때문이다. 송 과장의 고민도 깊어졌다.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했다. 그때 TV를 보다가 알게 된 것이 불우 어린이를 돕는 사회단체였다. 송 과장은 곧바로 소년소녀 가장 한 명을 결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시작된 송 과장과 불우아동과의 인연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이후 후원활동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1987년 당시 제 월급이 24만∼25만 원 수준이었어요. 빚내서 신혼살림을 월세방부터 시작했는데, 빚 갚고 저축하고 나면 한 달 생활비가 5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 5만 원 중에서 아동 후원금 1만 원을 미리 떼어내고 4만 원으로 한 달을 생활했어요. 생활비 5만 원에서 1만 원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죠.”

부인과도 많이 싸웠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쪼들리는 생활비인데, 생활비의 20% 정도를 아동 후원금으로 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송 과장은 그럴 때마다 “후원금을 끊으면 불쌍한 아이들이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없다”며 부인을 설득했다.

1998년 외환위기나 2009년 금융위기 때가 가장 아슬아슬했다. 부인의 양해가 힘이 됐던지 아이러니하게 송 과장은 이때 후원금을 더 늘렸다고 한다.

“제가 지금까지 2000명 정도의 후원자들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을 후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다니는 사람이 외환위기라는 핑계로 후원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다며 후원을 끊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오히려 후원금을 늘리게 된 것이죠.”

송 과장이 30년간 후원한 액수만 해도 1억 원이 넘는다. 지금도 송 과장은 매달 40만 원이 넘는 돈을 불우아동 후원금으로 내고 있다. 이 외에도 송 과장은 1979년부터 매월 헌혈봉사도 해 오고 있다. 헌혈만 319회를 했고, 500회까지 채우겠다는 게 송 과장의 목표다.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급식 봉사활동도 빼놓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올 때가 제일 뿌듯하다고 한다.

“이제는 30대 중반이 돼 직업군인이 된 후원 아동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연락이 왔는데, 지병이 있던 어머니에게 제가 헌혈증도 많이 드렸거든요. 왜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 연락하느냐고 많이 꾸중도 했는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잊지 않고 연락해 준 게 너무너무 고맙더라고요.”

송 과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힘든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어요. 정년퇴직이 2년 남았는데, 은퇴하면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아이들을 도와줄 돈을 모아야 하거든요. 아직도 광주·전남 지역에는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요. 이 아이들을 위해서 더 많은 독지가가 나타나 줬으면 좋겠습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임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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