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우하우스 교장 출신의 세계적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51년 엄청난 찬사 속에 미국 일리노이주에 판스워스 하우스를 지었다. 전면이 유리로 된 스틸 구조에 우아하고 혁신적인 설계, 주변 자연과의 조화로 지금까지도 현대 건축의 걸작이자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명성과 달리 데어 로에의 연인이자 집 소유주였던 에디스 판스워스 박사에게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유는 매우 평범했다. 판스워스는 사방이 유리로 노출된 탓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날이 저물었을 때조차 경비를 서는 파수꾼이 된 기분이었다. 집 전체가 엑스레이처럼 투명했기에 싱크대 밑에 빈 깡통 하나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밖에서 보는 시선을 의식해 가구 배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집을 둘러싼 갈등과 불화에 결국 둘은 갈라섰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건축학적 완성도와 예술성에서는 뛰어났지만 건축 심리학으로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작품이었다는 말이다.
이 책 ‘헤드 스페이스’는 건축 심리학(Architectural psychology)의 관점으로 현대인의 거주 공간, 구체적으로 도시 공간을 살핀다. 건축 심리학은 건축물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과학적 연구로 환경 심리학의 한 분야이다. 저자는 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정신과 의사이자 영국 왕립 심리협회 회원으로 지난 15년간 건축과 인간의 공존을 연구해온 건축심리학자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집, 직장, 학교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함께 있는 도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명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저자는 “오로지 예술적이기만 하거나 실용적으로만 접근한 건축은 모두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고 말한다. 경제 성장의 속도전 속에 볼품없는 사각형 아파트로 상징되는 ‘실용’이 도시 건축을 이끌어오다 최근에야 건축의 예술에 눈 뜬 한국 사회에서 보자면 한 단계 더 앞선 논의이다. 하지만 집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마음을 생각하면 본능적인 논의이다.
책은 집에서 시작해 집 외부의 이웃 환경과 거리, 공공 공간, 휴식 공간, 학교, 직장, 병원 등을 대상으로 그 공간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 어떻게 해야 사람 중심의 공간이 될 수 있는가를 살핀다. 전체적인 틀은 진화 심리학적 입장으로 집, 도시 등 지금의 공간은 인간의 긴 진화 과정의 결과이며 인류의 축적된 본능과 감정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사물 인터넷으로 집이 자동화되는 시대지만, 사람들은 집이라면 여전히 인류의 먼 옛날, 수렵 채취 시대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밖을 향한 시선을 확보할 수 있는 ‘동굴’로 여긴다고, 그래서 적당한 개방성과 폐쇄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한다. 또 인류의 탐색 본능 때문에 긴 복도 끝에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구조를 좋아하고, 창조성과 규칙을 찾으려는 욕구는 건축물의 장식이 적당히 복잡하지만, 패턴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일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이런 전체적인 틀 위에 건축 심리에 관련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좋은 공간이 무엇인가를 탐색해나간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건물 앞면의 개방 비율이 43% 수준일 때 가장 안락함을 느끼고, 창문이 하나인 방보다 두 개인 방을 더 선호하고, 창고나 대형 점포와 연결된 도로보다는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의 시내 중심가를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에 가까울수록 스트레스가 적고, 허공에 떠 있는 거리보다는 땅 위에 놓여 있는 거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자연이 가깝지 않을 때는 녹색 벽지 등을 통해 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놓으라는 식의 조언도 준다.
그런데 이런 연구 결과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내용이 새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배우지 않아도 일상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문제는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 저자는 도시 환경에 따라 삶의 형태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형태에 맞춰 도시가 지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공간만이 지속성과 영속성을 갖기에 도시 생활의 선순환 구조 형성을 위해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며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다. 변화를 위한 준비 운동이다. 360쪽, 1만85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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