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2016년 6월 5일 스위스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보장제 도입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가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재산 유무,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일정 수준의 돈을 지급한다. 16세기 영국 정치학자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 등장했던 복지 개념이다.

스위스 정부는 매달 성인에게 2500프랑(약 300만 원), 18세 미만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625프랑(약 78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투표에 부쳤으나 76.9%의 반대로 부결됐다. 연간 40조 원으로 예상되는 엄청난 재정 부담이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이 투표로 인해 유럽에선 기본소득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지난 1월 핀란드가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월 560유로(약 70만 원)의 기본소득 시범 실시에 들어갔고, 4월엔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가 빈곤선 아래에 있는 18∼65세 주민 4000명에게 1년에 1인당 1만6989캐나다달러(약 1422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쓰인 대형 포스터가 스위스 제네바 플랑팔레 광장에 펼쳐져 있다. 스위스는 지난 2016년 6월 5일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76.9%의 반대로 부결됐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쓰인 대형 포스터가 스위스 제네바 플랑팔레 광장에 펼쳐져 있다. 스위스는 지난 2016년 6월 5일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76.9%의 반대로 부결됐다.

과연 기본소득제는 정착할 수 있을까. 일하지 않고 받은 돈으로 삶을 영위하는 그야말로 꿈 같은 세상이 펼쳐질 수 있을까.

책은 바로 이 같은 기본소득제 논쟁과 확산의 계기가 된 작품이다. 1988년생으로 올해 만 29세인 저자는 기존 좌·우파의 상투적인 주장을 신선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뛰어넘어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을 집중 조명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어느 때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가득한 이때, 희망찬 유토피아를 부르짖으며 전 지구가 한 걸음 더 ‘진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매우 다양하고 실증적이다.

2009년 5월 영국 런던에서는 노숙자 13명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실험이 진행됐다. 정부는 수십 년 동안 해왔던 무료 급식소, 보호소 대신 노숙자 한 명당 3000파운드(약 450만 원)의 현금을 조건 없이 지급하고 생활 변화를 관찰했다. 대부분은 노숙자에게 무상으로 돈을 지급하면 나태해질 것으로 우려했으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노숙자들은 상당히 검소해서 1년간 소비한 금액이 평균 800파운드(약 120만 원)에 불과했다. 실험 시작 후 1년 반이 지나자 13명 전원이 자립과 개인 성장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부가 노숙자 관리를 위해 쏟아부었던 연간 65만 달러(약 7억3000만 원)는 5만 달러(약 5600만 원)로 줄었다. 비용 자체가 상당히 절약된 셈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주당 15시간 노동, 빈곤의 종말, 국경 없는 세계는 결코 판타지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는 200년 전에 비해 유토피아에 사는 게 맞다”면서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어째서 여전히 수백만 명이 빈곤에 허덕이는지, 과거 사람들이 꿈꾸던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왜 전혀 행복하지 않은지”를 역사학, 경제학, 문학, 진화심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헤친다.

그러나 조건 없는 기본소득제의 갈 길은 현재로선 멀어 보인다. 스위스의 찬반투표가 엄청난 국가적 재정부담을 우려해 부결됐듯이 아직은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당시 스위스 인민당 측은 “모든 국민이 연금생활자 집단이 되어, 국가의 주인에서 국가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유토피아를 향해 진보해 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로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저자의 관점이 과연 리얼리스트의 그것인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최근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전 총리는 복지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독일이 고실업과 경제침체에 신음하던 2003년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보장제도 축소 등의 개혁정책을 담은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이었던 그로서는 지지 기반의 기대를 저버린 복지·노동 수술 정책을 시도한 것이었다. 후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의 개혁정책을 충실히 계승했고, 독일 경제는 부활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이런 현실을 함께 감안해서 받아들일 때, 한국 사회에 유효할 것이다. 320쪽, 1만48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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