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미국 시애틀은 보잉의 도시였다. 보잉은 시애틀 인구가 35만 명이던 1960년대 10만 명 이상을 고용했다. 보잉과 무관한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불황을 겪으며 시애틀 직원의 3분의 2를 감원했다. 쓰나미급 고용 충격이었다. 위기는 거꾸로 기회가 됐다. 보잉에서 밀려난 인재들이 시애틀을 떠나는 대신 창업을 선택하면서 혁신의 토양을 일궜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시작한 곳도 시애틀 인근이다. 그 후로 젊은 두뇌들이 대거 유입된 시애틀은 이제 실리콘밸리를 위협하는 IT 거점이 됐다. 보잉은 2001년 본사를 시카고로 옮기면서 시애틀과의 85년 인연을 정리했다.

보잉을 이은 시애틀의 얼굴은 스타벅스다. 1971년 1호점을 열었을 때 커피 맛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하워드 슐츠가 인수한 후 커피 판매를 넘어 라이프사이클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시애틀은 스타벅스 이전에도 미국에서 카페인 소비가 가장 많았다. 거의 매일 비가 오는 악천후는 커피를 마시며 독서와 대화를 즐기는 시애틀 특유의 도시문화를 만들었다. 스타벅스 매장은 이제 세계에서 2만5000여 개를 헤아리고, 46년 연륜의 1호점은 성지 순례하는 커피 애호가들로 북적인다.

요즘 시애틀의 간판은 단연 아마존이다. 제프 베저스가 1994년 시애틀 외곽 밸뷰에서 창업한 아마존이 2010년 도심으로 본사를 옮긴 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5000명도 안 되던 직원 수는 4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늘어나는 인원을 감당하느라 33개 건물을 짓거나 사들였다. 시애틀 오피스 공간의 19.2%에 이른다. 2010년 이후 아마존이 기여한 직간접 투자가 380억 달러, 일자리는 5만3000개에 달한다. 인구는 11만 명이 늘었다. 가위 ‘아마존 시티’다.

베저스는 한발 더 나아가 ‘제2 아마존 시티’ 공모에 나섰다. 시애틀 본사 수준의 제2 사옥을 북미 지역에 신축하겠다고 하자 뉴욕·로스앤젤레스·보스턴·시카고·워싱턴DC와 캐나다 토론토 등 기라성 같은 도시들이 간택해 달라며 줄을 섰다. 투자액 50억 달러, 우량 일자리 5만 개가 걸린 프로젝트 아닌가. 베저스는 세세한 응모 요건까지 내놓으며 우월적 지위를 뽐내는 중이다. 기업과 도시, 혹은 국가는 일자리를 매개로 흥망을 함께한다. 고용을 많이 창출하는 기업은 큰소리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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