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우 이제훈을 보고 있노라면 ‘물이 올랐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 6월 개봉된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에서 괴짜 항일 운동가 박열을 거침없이 소화한 데 이어 이제는 깐깐한 공무원 민재로 분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로 관객들을 맞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도무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이라 볼 수 없는 두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제훈은 ‘확실히’ 전성기를 열고 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박열을 뒤로하고 이제훈은 자로 잰 듯한 5대 5 가르마에 안경을 썼다. 비뚤어진 책 한 권 찾아보기 힘든 그의 책상만 보더라도 민재의 성격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제가 캐릭터를 구축한 후 의상, 헤어팀과 의논해서 완성한 모습이다. 옥분의 시선으로 봤을 때 구청 직원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까? 깐깐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고 ‘만만한 상대가 아니구나’라고 느꼈을 거다. 사무적으로 일처리는 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미가 부족할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유일한 혈육인 영재를 챙기기 위해 그런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민재가 옥분과의 관계를 통해 따뜻해지고,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훈은 이 영화를 통해 나문희와 처음 만났다. 1941년생과 1985년생. 두 사람 사이에는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4번 넘게 펼쳐져 있다. 이제훈 역시 대선배님 앞에서 ‘감히 1대 1로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구청 공무원과 ‘민원왕’인 블랙리스트 고객이 만나 소통해가는 과정은 꽤 자연스럽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옥분은 나문희 선배님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워낙 어릴 적부터 봐온 대선배님이라 대사 한 마디 제대로 내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편하게 해주셔서 어떤 거부감도 없었다. 곁에서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극 중 두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며 소통해 간다. 겉만 봤을 때는 평범한 휴먼드라마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다뤘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역시 묵직하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결코 불편하지 않다.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와~ 위안부 이야기를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라고 무릎을 칠 법하다.

“저도 그런 소재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시나리오를 넘기기 시작하다가 중후반부에 옥분의 사연을 알게 돼 깜짝 놀랐다.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되려고 하는 건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봤는데 이야기가 정말 훌륭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친숙한 극영화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자칫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도 위안이 되는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이제훈 특유의 ‘착한 남자’ 이미지가 돋보인다. 그는 이미 영화 ‘건축학개론’, tvN 드라마 ‘내일 그대와’에서 선보였던 그의 모습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이 캔 스피크’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김 감독 역시 전작인 ‘쎄시봉’을 비롯해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등에서 착한 남자를 내세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냥 제가 떠올랐고, 주변에서도 ‘이제훈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고 한다.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면 ‘김현석의 남자’들이 있는 것 같다. 저 역시 같은 궤를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감독님을 처음 만났는데 이미 만난 적이 있었던 것처럼 편했다.”

바쁘게 달려온 이제훈은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않았다. 조금의 여유를 갖고 보다 나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하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도 나름의 욕심은 있다. 젊은 피가 용솟음칠 때 살과 뼈가 부딪히는 파열음 강한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다.

“제대로 된 액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와 같이 젊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작품 말이다. 복싱 영화도 좋을 것 같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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