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모집때 각종 편의 제공
일제강점기 위안부 강제 징용에 일본군뿐만 아니라 내무성, 외무성 등 일본 정부가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일본 공문서가 19일 처음으로 번역돼 공개됐다.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호사카 유지(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사진)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광진구 세종대 학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에 명백한 법적 책임이 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호사카 교수는 “당시 천황의 직속부대인 일본군의 결정을 각 정부부처가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 위안부 문제를 푸는 열쇠”라며 “군의 의뢰로 일본 정부는 업자들에 편의를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정부 부처가 위안부 동원에 개입한 구체적 사례를 보여주는 문서들을 제시했다. 1938년 2월 7일자 일본 경찰청 ‘시국이용 부녀유괴 피의사건에 관한 건’ 문서에서는 영사관과 헌병대 등 관계 부처의 합의로 위안소가 설치됐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이 문서에는 ‘전선 각지에서 황군의 진전에 따라 장병들의 위안방법에 관해 관계기관에서 깊이 연구 중이었다’ ‘영사관으로 오는 육군 무관실 헌병대의 합의 결과, 전선 각지에 군 위안소를 설치하게 됐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본 내무성에서 경찰에 비공식적으로 상하이(上海) 파견군 위안부 모집을 의뢰해 상당한 편의를 제공했다는 경찰서장의 진술도 확인된다. 내무성 간부가 위안부 동원을 허가하고 편의 제공을 명령한 ‘지나 도항 부녀 취급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도 있었다. 호사카 교수는 “군이 위안소 설치를 결정하면 영사관 내 무관실(武官室)이 위안소 설치와 성병 검사를 준비했고 영사관은 업자와 위안부들의 도항을 책임진 뒤 헌병대에 넘겼다”며 “이처럼 위안부를 만드는 과정에 일본 정부의 각 부처가 시스템 곳곳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1945년 이전의 일본군은 일왕 직속으로 운영됐고 ‘황군(皇軍)’으로 불리며 일본행정부보다 막강한 권한을 누렸다. 호사카 교수는 “결국 일본 정부, 구체적으로는 특히 외무성과 내무성은 위안부 동원에 군이 보낸 업자들에 편의를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준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도 영유권 연구를 시작한 세종대 독도연구소는 1997년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이 출판한 ‘정부 조사 종군위안부 관계 자료집성’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 이날 중간 보고 성격의 기자회견을 했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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