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검출돼 인체 위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다양한 종류의 생리대가 진열돼 있다. 과학 전문가들은 VOC가 모두 위해물질은 아니며, 검출량도 극미량이어서 인체 위해성이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검출돼 인체 위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다양한 종류의 생리대가 진열돼 있다. 과학 전문가들은 VOC가 모두 위해물질은 아니며, 검출량도 극미량이어서 인체 위해성이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
- 케미포비아 확산…‘VOC’ 제대로 알고 쓰기

생리대 1개 화학물질 검출량
1분간 흡입하는 실내공기의 400분의 1

쉽게 증발해버리는 유기화합물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도‘VOC’

생리대 검출된 VOC 극히 미량
발견만 되면‘맹독성 물질’공포

정부대응 미숙… 국민불신 초래
깨끗한 사용법 교육 · 홍보 필요


‘케미포비아’ 시대. 살충제 계란, 유해 생리대 논란 등을 겪으며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칭한다. 불안감을 넘어 일부에서 공포까지 하소연하는 시점에서 식품·위생용품 등에서 발견된 화학물질이 무조건 나쁜 것인지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화학물질이 모두 유해하다는 공식은 잘못된 등식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케미포비아를 일으킨 사건에서 검출된 용량은 극미량이어서 인체에 유해하다고 볼 수 없다는 과학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소량으로도 유해성이 확인된 화학물질도 일부 있지만, 지나치게 많이 사용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지 화학물질 검출 자체만으로 유해성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도할 경우 문제가 되겠지만,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면 생활 자체가 힘들 수 있다. 막연하게 불안해하지 말고 화학물질에 대해 과학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생활 속 VOC를 대하는 지혜=휘발성유기화합물(VOC·Volatile Organic Compound)은 말 그대로 쉽게 증발하는 유기화합물을 뜻한다. 휘발유처럼 석유에서 분리하거나 인공적으로 합성하기도 하지만, 자연에도 존재한다. 식품을 저장·가공·조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피톤치드도 VOC다.

일상생활에서 주로 물에 잘 안 녹는 접착제·잉크·도료·향료·색소를 녹이는 데 사용되며, 세탁 시 드라이클리닝에서도 VOC를 쓴다. 사용 후에 남은 VOC는 쉽게 증발해 버린다. 물론 벤젠이나 톨루엔 등 인체에 유해한 VOC도 있지만, 대부분 호흡에 의한 흡입독성이다. 장기간 노출돼 만성 중독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정부가 노출 허용기준을 설정해서 관리한다. 가공식품에도 VOC 잔류 허용기준을 정해 놓기도 한다. 화학을 전공한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생리대에서 검출된 VOC는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 ‘맹독성’ 위험물질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해당 VOC에 대한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검출량도 부작용을 걱정하기에는 크게 적지만 이러한 과학적 사실보다는 ‘검출됐으니 위험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만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VOC의 유해성은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무작정 겁을 내기보다 위험을 적절하게 회피·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리대 위해성 조사는 진행 중=위해성 논란은 한 시민단체가 일회용 생리대 제품 10개를 검사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VOC가 검출됐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후 많은 여성이 생리통 증가, 생리혈 감소, 생리 주기 변화 등의 건강 부작용을 이번 VOC 검출과 연결짓고 있는 분위기다. 해당 시민단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수조사를 촉구했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다만 식약처의 전수조사는 VOC가 생리대에서 어느 정도 검출됐다는 시민단체 발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독성물질에 대한 인체실험은 불법이어서 동물실험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제쳐 두더라도, 검출된 VOC의 양이 극히 미량이기 때문이다. 해당 생리대에서 가장 많이 검출된 VOC의 총량은 ㎥당 6500ng(나노그램·10억 분의 1g)이다. 이를 마이크로그램(㎍)으로 바꾸면 6.5㎍/㎥이다. 이를 다중이용시설 실내 공기 기준인 500㎍/㎥과 비교하면 이해가 빠르다. 건강한 성인이 VOC 허용기준 수준의 실내 공기를 1분간 호흡할 때 흡입하는 VOC의 양은 생리대 1개의 최대 VOC 총량보다 400배 많다. 또 피부를 통한 흡수는 호흡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을 고려하면, 실제 생리대 1개에서 흡수하는 유기화합물은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다. 조정환 숙명여대 약대 교수는 “검출량만 보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며 “또 위해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각 위험한 물질을 개별적으로 분석해야 하지만 이번 자료는 VOC의 총량이며 실제 위험물질이 들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막연한 불안감보다 위생적 사용이 먼저= 케미포비아는 정부의 대응 미숙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인체 유해성이 미미하다는 학계와 정부 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렸으며, 이는 생리대 위해성으로 옮아붙었다. 시민단체에서 생리대 위해성을 식약처에 제기한 시점은 지난 3월, 곧이어 4월 살충제 계란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그러나 식약처는 당시 촛불집회 등 정국 혼란 속에서 해당 문제 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일대 혼란으로 확대되는 동안 전문가 단체 등이 발표한 과학적 사실은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고, 막연한 불안감만 키웠다.

사실 생리대에 대한 위해성 논란은 미국에서 먼저 있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흡수력을 크게 개선한 생리대를 출시하면서 심각한 독성 증상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원인은 흡수성이 너무 좋다 보니 많은 여성이 장시간 착용하면서 내부에서 세균이 증식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국내 생리대도 위생적인 사용에 대한 교육은 물론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덕환 교수는 “무차별적인 화학물질 혐오증은 오히려 건강과 환경을 망치는 길이 될 수 있다”며 “품질 개선 노력과 함께 위생적인 사용법에 대한 더 많은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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