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에 시작하는 유엔 정기총회는 국제정치의 가장 큰 마당이다. 193개 회원국의 대통령, 총리 등이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국가 홍보와 선전, 설전의 무대를 만들어간다. 도드라지게 기억되는 연설은 강대국 비판이다. 2006년 총회에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악마’라고 지칭하며 이라크전을 비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2011년 “미 제국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이스라엘 감싸기에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0년 총회에서는 필리핀 대표가 “소련이 동유럽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는데, 이에 격분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은 연설 도중 신발을 벗어들고 흔들어 큰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대부분 유엔총회 연설을 한반도 정책 발표의 기회로 삼았다. 유엔 가입 전이던 1988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은 4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7·7선언’의 내용을 설명했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1991년과 이듬해에도 한반도 통일 등을 주제로 연설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평소 스타일대로 “머지않은 장래에 한반도가 통일될 것을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그해 개최된 6·15 남북 정상회담 지지를 호소했다. 유엔은 남북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공동의장 성명을 채택해 호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연설에서 북한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인류의 평화·번영을 위해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강조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자신의 대북 정책인 ‘그랜드 바겐’을 설명했지만 자유무역체제 확산 등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핵무기 집착을 버리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경제 발전의 길로 나서라”고 촉구했는데, 북한은 “유엔에서 동족 대결 망발을 늘어놓았다”고 곧장 반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한다. 북한에 대해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북핵 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출범한 한국의 진보 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미래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킬 명연설을 기대한다. 반대로 동맹과 우방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면 외교적 난관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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