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마장축산물시장이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시기임에도 예년보다 손님이 크게 줄자 한 도매 업체는 판매대 두 개 중 하나를 아예 비워 두고 있다.
- 청탁금지法 시행 뒤 첫 추석 … 대목 실종된 市場 표정
마장축산물시장 손님 드문드문 선물예약 작년의 절반도 안돼 택배·포장업체도 연달아 타격
선물 10만원으로 상향조정안 추석 前 물거품 뒤 판매 비상 “法 때문에 팔아도 반품 걱정”
“어휴, 말해 뭐해요. 보통 추석 선물 예약 판매가 오늘쯤 마무리되는데 지난해의 절반도 안 됩니다. 20여 년 장사했지만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에요.”
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에서 만난 이승원 삼성축산 대표는 한숨부터 쉬었다. 이곳에서 20여 년째 축산 도·소매업을 하는 이 대표는 “매년 50세트 이상 주문하던 업체들도 20세트 이하로 줄었고, 20만 원 이상의 한우세트는 주문율이 뚝 떨어졌으며, 10만 원대의 LA갈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마장축산물시장은 추석 연휴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산했다. 예년이라면 예약 판매된 물량을 전국으로 나르는 택배 차량과 추가 주문을 하려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이날은 1시간 동안 찾은 손님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점포 3000여 개, 관련 종사자 1만2000여 명의 생계가 달린 시장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점포 중에는 고기를 내놓는 매대를 아예 반 이상 줄인 곳도 많았다. 생고기가 가득해야 할 냉장 매대에는 텅 빈 하얀색 쟁반만 즐비했다.
서울 및 수도권 육류 소비의 60% 이상을 담당하면서, 명절이면 기업 등의 대규모 선물세트 주문을 받았던 마장축산물시장이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첫 추석 대목에서 최악의 경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행인들을 호객하던 남순옥 대호축산 사장은 “한우세트는 보통 20만 원 이상으로 구성됐는데, 지금은 김영란법 때문에 5만 원짜리를 찾으니 장사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그마저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축산물 점포들이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이와 연계된 운송, 택배 기사, 선물세트 포장업체 등도 연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마장축산물시장에서 물류업을 하는 A 씨는 “마장에서 일한 지 7년이 좀 넘는데, 이렇게 배달할 물량이 없기는 처음”이라면서 “다른 분야로 거래처를 바꾸고 싶어도 경기가 살아 있는 곳이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마장축산물시장의 불황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관광객이 한창 늘어날 때는 시장에서 구매한 고기를 바로 구워서 먹을 수 있는 형태의 식당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식당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황이다. 일반 과일 상점 등에서도 한숨이 이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찾은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인근 한 과일 상점에서도 추석 과일 선물세트를 가게 앞에 쌓아놓았지만, 이를 구매하는 손님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한 종업원은 “배나 사과 선물 세트 판매율이 지난해보다 30∼40% 정도 줄어들었다”면서 “김영란법 때문에 돌아올 반품 처리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청탁금지법상 선물의 가액 기준을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개정안 등을 논의했지만, 사실상 물거품이 되면서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설 명절 때 한우는 전년 대비 판매액이 24.4% 감소했고, 과일은 31%, 수산은 19.8% 줄어들었다. 이번 추석은 황금연휴까지 겹쳐 하락 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황엽 전국한우협회 전무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김영란법과 관련 농수축산물 업계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고 말했던 것도 안 지켜지고, 추석 전에 가액 상한 조정도 결국 엎어졌다”면서 “농가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는 데다 유통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몰려 있는데, 정부가 체계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