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기업들에 실태조사 나서
금융위도 “5년 계획 제출하라”
“기업 자율경영에 부당한 간섭
노동시장 경직성 커질것”지적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삼성과 현대차, SK, LG, 롯데 등 30대 대기업 집단과 여타 주요기업에 채용 계획을 제출해 달라고 일제히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원회도 KB국민과 신한, 우리, KEB하나 등 시중은행을 상대로 5년 치 채용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실태 조사를 빌미로 한 ‘고용 압박’이 이번 정부에서는 전방위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재계와 경제단체, 금융권 등에 따르면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11, 12일 이틀 동안 30대 대기업 집단 등에 2016년과 2017년 상반기 대졸·고졸·경력 등을 포함한 전체 채용 실적, 올 하반기 채용 계획 등을 15일까지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경제단체가 회원사 채용 계획을 모아서 발표한 적은 있어도 대통령 직속 조직이 직접 기업에 관련 내용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라며 “요청을 받은 기업들 대부분이 제출했거나 제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도 9월 초 주요 시중은행에 월말까지 올해부터 2021년까지 5년간의 연도별 채용 계획을 구체적인 숫자로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금융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금융위가 일자리 현안을 직접 챙긴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금융권 얘기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8월 증권사에 하반기 채용 계획을 제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재계와 금융권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직속 기구와 금융 정책·감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 등이 이처럼 ‘총대’를 메고 채용 계획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자 당혹해 하고 있다. A 기업 인사 책임자는 “대통령이 직접 채용 계획을 묻는 것과 다름없는 압박감을 느낀다”면서 “대외비로 하고 정책 수립을 위한 내부 참고자료와 연말 우수 기업 포상용으로만 활용한다고 하지만, 줄 세우기와 압박용으로 활용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B 기업 고위 임원은 “청년 실업률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자 정부가 신산업 육성을 통한 고용 창출 정책은 뒤로한 채, 해묵은 정경유착 행태인 (손쉬운) 고용 압박을 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규제와 노동 개혁은 뒷전인 채 각종 비용 전가와 규제로 옥죄는 상황에서 압박만 해봐야 기업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C 은행 임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요구와 핀테크(금융 IT)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증가 추세로 신규 채용을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는데, 향후 5년 치 신규 채용 계획을 한꺼번에 제출하라고 해 당황스럽다”면서 “진입규제를 낮추고, 신규 금융사를 유치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지, 기존 금융사에 고용을 압박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금융이익을 빼먹자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원식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업의 채용 수치를 직접 챙기는 것은 자율 경영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관치(官治)”라며 “(아직 대놓고 고용 압박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역대 정부의 정경유착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새 정부 들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되레 강화하고 있는 속에서 무작정 고용 압박을 가하면 한국 경제의 근간인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범·권도경·황혜진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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