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씨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의 한 거리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뻥튀기를 정리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김성한 씨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의 한 거리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뻥튀기를 정리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뻥튀기 장수 김성한 씨

‘세상에서 가장 값진 3000원.’

“저기요, 선생님. 제가 큰 도움을 받은 만큼 저도 저만큼 어려운 가정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당장은 제가 벌이가 없어 이것밖에 못 할 것 같은데, 혹시 월 3000원도 후원할 수 있을까요? 이것밖에 못 해 정말 죄송합니다.”

A 사회복지사는 전화로 흘러오는 김성한(56) 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고 했다.

2015년 어느 날, A 사회복지사는 잘 알고 지내던 모 중학교의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사회의 지원이 꼭 필요한 아이가 있는데요.”

그 전문가는 A 사회복지사에게 김정현(당시 16세·가명) 학생을 소개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아버지 김성한 씨는 뻥튀기 장사로 척추와 무릎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건사하고 있었다. 김 씨에게 유일한 생계수단은 뻥튀기를 가득 실은 낡은 오토바이 한 대였다. 오토바이에 뻥튀기와 함께 몸을 싣고 김 씨는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문제는 2014년에 터졌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오토바이가 낡아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기면서 정차해 있던 외제 차를 들이받았다. 정강이뼈가 으스러져 김 씨는 다리에 50여 개의 핀을 박은 채 한 달가량 입원해야 했다. 병원비만 800여만 원이 나왔다. 한 달 벌이의 10배가 넘는 치료비를 김 씨 가족은 감당해 낼 수 없었다. 김 씨는 이미 2012년에도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피곤한 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다가 졸음운전을 한 탓이었다. 눈만 한 번 ‘껌뻑’한 것 같은데, 바로 앞에 트럭이 있었다. 왼쪽 발등이 부러지면서 발바닥이 폴더처럼 뒤집혔다. 한 달 보름을 누워 있었다. 병원비만 850만 원. 여기저기서 빚을 내 겨우 치료를 마쳤는데, 2년 만에 또 대형 사고를 당한 것이다.

2015년 당시 김 씨 아들인 정현이네의 딱한 사정을 들은 학교 관계자가 결국 A 복지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복지관의 도움으로 김 씨의 사연이 공중파 라디오 방송을 타게 됐다. 세상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일까. 전국에서 독지가들이 나서면서 1300여만 원의 성원이 답지했다. 그 돈으로 김 씨는 병원비를 갚고, 정현이는 장래 꿈인 화이트 해커가 되기 위해 컴퓨터 학원에도 등록할 수 있었다.

김 씨에게 후원금 지원이 종결됐다는 전화를 했던 A 복지사는 ‘어려운 아이를 위해 3000원도 후원이 가능하냐’는 김 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3000원. 초등학생 용돈도 안되는 적은 돈이지만, 뻥튀기 2봉지를 팔아야 김 씨에게 주어지는 돈이다. 뻥튀기 한 봉지도 못 팔아 ‘공치는’ 날이 많은 그에게 뻥튀기 2봉지는 어쩌면 ‘하루 벌이’가 될 수도 있는 돈이다. 후원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불우아동을 위해 자신의 생계비를 기꺼이 내놓겠다는 김 씨의 말에 A 복지사의 콧날은 차갑게 시려 왔다.

더 놀라운 일은 김 씨가 후원하는 곳이 이 복지관 외에 두 군데가 더 있다는 것이다. 미아 어린이 찾기운동,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도 김 씨는 각각 2000원과 5000원을 매달 후원하고 있다.

“담배를 끊었어요. 담배 피울 돈으로 후원하자고 생각했죠. 정말 어려울 때는 후원도 끊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했는데, 차마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4세 때부터 극장에서 광주리를 목에 걸고 군것질거리를 팔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구두닦이, 신문 배달, 장사,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김 씨는 지난 1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살아온 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김 씨는 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 못했다. 유전이다. 김 씨의 아버지도 그랬고, 큰아들도 시력에 장애가 있다.

“다행히 큰아들이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어요. 그런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계를 지원하는 가족이 생겼다고 건강보험 혜택이 끊겼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도 없어졌고요. 집사람도 아픈데, 건강보험 혜택이 없어져 무엇보다 앞으로 나갈 병원비가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걱정은 올해로 18년째 살고 있는 임대주택의 임차 기간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이다. 과연 서울에서 김 씨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여름에는 날씨가 덥고 습기도 많아서 뻥튀기가 금방 쉬기 때문에 한 달 이상 장사를 못 해요. 그때 자원봉사할 수 있는 곳을 좀 알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사고는 많이 당했지만, 그래도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김 씨는 현재 3급 시각 장애인이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임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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