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 정기문 지음 / 책과함께

오늘날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긴 이유에 대한 연구가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고대·중세의 지식인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오래 산다고 생각했고 이는 당시의 기록으로도 증명됐다.

중세 초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성의 평균수명은 42~44세였던 데 비해 여성은 22~24세에 불과했으며 헴밍엔, 바인가르텐 등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 남녀성비의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책의 저자가 주목한 것은 이 시기 ‘식생활의 변화’였다. 가축품종의 개량·사료 재배 증가 등의 이유로 14세기 사람들의 육류 소비가 늘어났고, 과거 남성들만 먹을 수 있던 고기를 여성들도 먹게 되면서 영양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것. 특히 여성은 생리, 출산, 육아 때문에 남성보다 많은 철을 소비하게 되는데 고기 속 단백질 섭취를 통해 이런 부분이 대폭 보완되면서 15세기 이후에는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많아지게 됐다. ‘육식’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책은 이처럼 인류의 진화와 사회·문화의 발전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먹고 마시는 일에 밀접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을 이어져 오며 많은 이의 피와 살이 됐던 음식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인간에 대한 또 다른 통찰 지점을 제공해준다는 게 역사학자인 정기문의 생각이다. 따라서 책은 고기(육식), 빵, 포도주, 치즈, 홍차, 커피, 초콜릿이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식 7가지를 선정해 이들이 세계사를 어떻게 좌우해왔는지를 살핀다. 앞의 네 가지 음식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요소였다면 뒤의 세 가지는 인류의 음식에 풍미를 더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커피라는 이름은 12~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사인 수피들이 이 음료를 ‘무엇인가에 대한 욕망을 없애다’라는 뜻의 ‘카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 잠도 오지 않고 육체적 욕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포착한 수피들이 수행을 하면서 커피를 집중적으로 마셨기 때문. 그런 커피가 17~18세기 유럽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마시는 ‘이성의 음료’로 변모한다.

영국 혁명기에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토론할 장소로 커피하우스만 한 곳이 없기도 했지만 커피 속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한몫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커피벨트’라고 불리는 적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정작 북반구에 위치한 부유한 나라들에서 대부분 소비되기까지 이러한 역사적 굴곡이 자리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각 ‘음식의 역사’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초기에는 권력층만 향유했으며 서민이 먹었다 해도 그 질의 차이가 현격했다는 사실, 그리고 근현대로 올수록 누구나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문명과 역사의 발전이란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를 쟁취해온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책 곳곳에 숨겨진 저자의 생각이다. 336쪽, 1만4800원.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인지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