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가을, 걷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일교차가 큰 탓에 낮은 아직 뜨겁지만 해가 떨어지고 나면 이처럼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픽 노블 ‘심야 이동 도서관’(이숲)은 이런 밤, 길을 걷다 우연히 심야 이동도서관을 만난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작가 오드리 니페네거의 그래픽 노블입니다. 애인과 다투고 나온 여성이 어느 밤, 인적 없는 길을 걷다 환하게 붉을 밝힌 낡은 캠핑카를 개조한 심야 도서관을 만납니다. 들어가 보니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그곳엔 그가 이제까지 읽었던 모든 책이 시간 순서대로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이동 도서관은 문을 닫고 어디론가 떠나 버리지만 그는 평생 이 도서관을 찾아 헤맵니다.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힌 심야 이동도서관, 자신이 읽은 모든 책이 꽂혀 있는 공간이라는 매혹 때문에 이 그림책이 가끔 생각이 납니다.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 꽂혀 있진 않지만 깊은 밤 밤새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는 22, 23일 1박 2일 심야 책방을 엽니다. 밤새 불을 밝히는 책방이라니 꽤 낭만적입니다. 이번 심야 책방은 지난해 여름 일산점에서 진행한 2박 3일 심야 책방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한 번 더 기획된 행사입니다. 광화문 사거리 중심에 서점을 연 대산 신용호 교보문고 창립자 100주년 기념행사이기도 합니다. 골든 벨 행사, 영화 관람, 작은 연주회, 저자 북 토크가 마련되고, 자유롭게 함께 읽는 밤샘 독서도 이어집니다. 평소 교보문고의 풍경이나 심야 책방에 대한 기대감을 생각해 보면 꽤 많은 사람이 북적일 듯한데,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 속에서 혼자 되기가 요즘 트렌드이니 가족과 함께 혹은 홀로 가을밤 심야 책방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좀 더 가을밤 거리의 자유로움을 원한다면 이번 주말까지 서울 서교동 홍익대 일대에서 열리는 와우북페스티벌을 권합니다. 오후 8시까지입니다. 매년 약 40만 명이 찾아오는데 방문객 수로만 따지면 책 관련 행사 중 국내 최대 규모입니다. 올해에는 1인 출판사를 포함해 100곳이 넘는 출판사가 참가해 거리 도서전을 연다니 부스 부스를 차례로 지나며 책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겠지요.

선선한 밤공기 속을 걸어 심야 책방을, 초저녁의 도서전을 찾아보는 것, 요즘처럼 걷기 좋은 가을을 잘 보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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