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살리토에서 여행을 즐기기보단 엘렌이 꿈꾼 그곳의 삶을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소살리토 여행은 영화에서 엘렌이 벽에 그려낸 꿈과 현실의 괴리, 그것과 닮아 있었다. 소살리토를 나오는 페리의 갑판 위에 서서 시원하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여행이야말로 꿈이지’.”
미국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에는 관광객만 득시글댔다. 영화 ‘소살리토’의 주인공 장만위(張曼玉)와 리밍(黎明)의 애틋하면서도 쓸쓸한 사랑의 정취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무모했다. 그래도 여정이 헛되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의 판타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성찰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배경여행가’라는 독특한 이름을 자처한다.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그 배경을 찾는 여행을 수 년째 하며 그에 관한 글을 써 오고 있다. 물론 직업적인 여행가는 아니다.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그 전에는 백과사전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했다. 건조한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했던 덕분에 여행기의 문장이 달뜨지 않고 정돈돼 있다. 여행을 함께 하거나 혹은 여행지에서 반추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미소를 짓게 하면서도 아릿한 느낌을 준다.
책의 맨 앞을 여는 여행지는 일본 소설 ‘설국’의 고장인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 이곳에서 저자는 ‘말도 안 되는’ 풍경을 경험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소설의 첫 문장처럼 터널을 벗어나자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설국을 만난 것. 작품 속 주인공처럼 료칸에 묵으며 소설 사이사이에 숨은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젊은 여성인 저자의 예술 향유가 주로 일본과 유럽 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가 고흐가 사랑한 남프랑스 아를,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이 흐르는 영국 런던, 책 ‘핀란드 여행’ 때문에 찾은 헬싱키 등.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화가 세잔의 흔적을 찾으러 갔다가 작가 카뮈에 관한 전시회를 만나는 등의 우연은 흥미롭다.
미국에 관한 글도 7꼭지에 달한다.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서 만난 힐링 기운을 오롯이 전하고 있다.
여행기답게 수려한 풍광의 사진들이 눈을 환하게 한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책의 구석구석에 담겨 있어서 사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글의 각 꼭지에는 여행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가 있다. 304쪽, 1만3800원.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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