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새 관찰기 / 박웅 지음 / 글항아리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던 저자가 야생 조류 촬영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98년부터다. 지리산 풍경을 찍고 하산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잣까마귀의 노랫소리에 매료된 후 20년 가까이 새 사진에 몰두해 왔다.

그동안 저자는 수많은 새를 촬영하면서 혹독한 야생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새들을 아끼고 사랑하게 됐다. 동시에 여러 종류를 찍기보다는 특정한 새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관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2013년 펴낸 ‘천년의 순간 참매 순간을 날다’이다. 8년여간 관찰을 통해 참매의 일생을 추적했다. 그런데 저자는 참매를 관찰하던 중에 발견한 독특한 생김새의 새에게 호기심을 갖게 됐다. 이름조차 낯선 호사비오리였다.

기러기목 오릿과 비오리속에 속하는 호사비오리는 겉모습이 화려하다. 머리의 긴 댕기와 선명한 붉은색 부리, 옆구리에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비늘 무늬가 강렬하다. ‘호사(豪奢)’라는 이름도 이처럼 화려한 생김새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체 수는 매우 적다. 현재 지구상에 1000마리도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세계자연보전연맹은 2009년 호사비오리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8호로 지정했고, 중국은 국가 1급 보호동물로 정했다. 특히 중국에선 ‘국보’라 불리는 판다, 화남호랑이, 금사후(원숭이)와 함께 4대 야생동물로 꼽힌다.

그러나 저자가 무엇보다 호사비오리에게 주목한 이유는 백두산에서 번식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호사비오리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번식을 위해 백두산으로 돌아간다. 분단된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철새인 셈이다. 저자는 지난 6년간 해마다 백두산을 찾아가 호사비오리를 찍었다. 지금도 백두산은 중국을 거쳐야만 오를 수 있는 ‘금단’의 지역이다. 저자는 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중국 지린(吉林)성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에 호사비오리의 번식을 돕는 자연보호지구를 알아내고 그 안에서 호사비오리의 번식과 육아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호사비오리의 수컷(왼쪽)과 암컷. 수컷은 머리 깃털이 검은색, 암컷은 갈색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호사비오리는 한국에서 겨울을 보낸 후 봄이 되면 고향인 백두산 지역으로 돌아간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국내에서는 천연기념물 제448호로 지정돼 있다.  글항아리 제공
호사비오리의 수컷(왼쪽)과 암컷. 수컷은 머리 깃털이 검은색, 암컷은 갈색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호사비오리는 한국에서 겨울을 보낸 후 봄이 되면 고향인 백두산 지역으로 돌아간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국내에서는 천연기념물 제448호로 지정돼 있다. 글항아리 제공

사람의 발길을 두려워하는 야생동물의 습성상 저자는 최고의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지루한 위장 텐트 생활을 해야 했다. 호사비오리 새끼들이 알을 깨고 둥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도중에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한번은 구렁이가 촬영 대상인 호사비오리의 둥지를 습격했다. 텐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저자는 부화 직전 알을 구하기 위해 얼른 쫓았지만 구렁이는 또 달려들었다. 보다 못한 저자는 결국 구렁이를 포획해 가두고 촬영을 계속했다.

또 한번은 장대비로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강 건너 둥지 속 알의 부화 장면을 놓쳤다. 오랜 기다림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부화한 새끼들이 이소(移所)하는 장면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했다.

호사비오리는 물오리이지만 물가가 아니라 물가 주변의 숲 속에 산다. 10m 이상의 높은 나무 구멍 속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따라서 부화한 새끼들이 물가로 가기 위해선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미 호사비오리가 시범을 보이듯 둥지에서 뛰어내린 후 바닥에서 꽥꽥거리는 모습, 이때 새끼들이 응답이라도 하듯 하나둘씩 둥지 밖으로 몸을 던지는 찰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호사비오리는 짝짓기도 유별나다. 이 새들은 반드시 물 위에서 짝짓기를 한다. 저자는 어느 해 봄, 강의 한복판에서 짝짓기를 마친 수컷이 암컷의 뒷목을 물고 한 바퀴 돌리는 특별한 의식을 하는 장면도 포착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백두산에 서식하는 다양한 새를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지 못했던 새매를 만났고,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수리부엉이를 발견했다. 노란 깃털이 예쁜 꾀꼬리, 화려한 머리 깃털이 특징적인 후투티의 생태도 확인했다.

새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저자가 수없이 오르내린 백두산의 풍경도 빼어나다. 특히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천지의 장관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356쪽, 3만5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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