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대법원 강당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대법원 강당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양승태 퇴임… 마지막 메시지

“진영 대립 격화… 위험 수준”
“속은 썩고 매 맞은 자국들…”
‘고목 소리 들으려면’ 詩 읊어


6년 임기를 마치고 24일 퇴임하는 양승태(69·사법연수원 2기) 대법원장이 22일 정치세력의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충하는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화돼 거의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며 “정치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사법부에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작심한 듯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하는 정치권과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극언을 마다하지 않는 도를 넘은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인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양 대법원장은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조화롭고 평화로이 공존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모든 사람을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일률적으로 줄 세워 재단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하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면서 다른 쪽의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진영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비판은 최근 대법원 판결에 대한 여권의 정치적 비난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선 판사들이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양 대법원장은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법관 독립의 원칙은 법관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법관에게 특혜나 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이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이 이러한 헌법적 책무를 깊이 인식하고 법의 정신에 따른 슬기로운 균형 감각과 의연한 기개로써 지혜와 희생정신을 발휘할 때 사법은 비로소 국민의 굳건한 신뢰 위에 서서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국민의 신뢰는 스스로를 희생하며 국민을 섬기려는 진정한 마음이 표출됨 없이 정책이나 제도의 개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임기 말 법원행정처의 인사권 남용 논란과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 등을 주도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오현 스님의 ‘고목 소리 들으려면’이라는 시 구절을 소개하며 4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 소리 들으려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매 맞은 자국들도 남아 있어야’라는 구절을 읊은 양 대법원장은 “그저 오래된 법관에 그치지 않고 온몸과 마음이 상처에 싸여있는 고목 같은 법관이 될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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