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이 시조를 두고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라고 비난하고, 또 어떤 이는 오를 수 있다고 했으니 극복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넘어 이 시조에서 태산은 분명 하나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높음’의 상징이다. 마치 오르기를 포기할 정도로 높은 산을 태산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태산의 높이는 실제로 해발 1500m 정도에 불과하다. 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산둥(山東)성에 위치해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태산은 관광지로도 유명한데, 정상까지 걸어서 겨우(?) 6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물론 잘 놓인 6000여 개의 계단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지금 아무리 등산로가 잘 마련돼 있어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어려움을 불가능의 상징으로 시조에 표현하다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지리산이나 설악산보다도 낮은 산을 양사언은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양사언이 거론한 태산은 어쩌면 상상 속의 산이었는지도 모른다. 태산은 공자(孔子)와 관련이 있는 산으로, 조선 시대에 추종하던 유교를 상징해 그 자체의 물리적 높이보다 상징적 높이가 더 높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아니면 태산을 직접 다녀온 주변의 누군가가 부풀려 이야기했거나 과장해서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양사언이 생각했던 태산은 가장 높은 산이었고, 그것은 물리적인 산이 아니라 상상 속의 산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을 사대했다. 중국을 추종하고 그들의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이는 역사적 팩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조선 시대는 중국을 잘 몰랐던 시대다. 명(明)나라는 조선인이 중국을 여행하거나 자국의 책을 수입하는 것도 막았다. 심지어 조선의 사신이 중국을 방문해도 수도조차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청(淸)나라는 명나라에 비해 유화적인 조치를 취했으나, 그 시기 조선 문인들은 소중화(小中華)에 빠져 청나라를 무시했다. 심지어 명나라의 재건을 떠들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중국을 직시하지 못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사대라는 관념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것이다. 어쩌면 양사언의 태산은 이런 현상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혹시 또 다른 형태의 ‘태산’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중국에 대한 호불호로 중국을 평가하고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중국의 나쁜 점만 부각하는 것은 좋은 점만 강조했던 조선 시대의 또 다른 형태의 답습이다.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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