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조사팀장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이 27일 진천선수촌 개촌식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51년 만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직전인 1964년 도쿄올림픽에 224명의 선수단을 파견하고도 금메달 없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국제대회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 1966년 만들어졌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선수촌은 근처에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 무덤 ‘태릉(泰陵)’에서 이름을 따왔다. 배출된 국가대표 선수만도 2만여 명에 이른다. 하계올림픽에서만 255개의 메달을 따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새벽에 태릉선수촌을 찾아 선수들과 조깅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올림픽 등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단골 방문 코스이기도 했다.

1970년대는 일반인에게 개방해 관광 명소로도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장년층에겐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렇지만 선수와 감독에겐 ‘창살 없는 감옥’에 비유되기도 한다. 장기간 합숙을 하면서 빡빡하게 짜인 훈련일정에 따라 비지땀을 흘려야 했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선수들 사이에선 ‘담치기’로 밤중에 무단이탈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고, 이를 막으려는 코칭스태프와 숨바꼭질 끝에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적발되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예산 부족으로 임차료를 못내 폐쇄될 처지에 놓인 적도 있었다.

태릉선수촌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이 확대되고 국가대표 선수도 늘어나면서 포화 상태가 됐다. 시설도 낙후해 유지 관리를 위한 보수 비용도 해마다 증가했다. 결국 대한민국 체육의 백년대계를 이끌 종합훈련장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새 보금자리를 건설하게 됐다. 진천선수촌은 태릉선수촌의 5배에 달하는 159만㎡ 부지에 수용 선수도 3배나 많은 35개 종목 1150명이 한꺼번에 훈련할 수 있다.

진천 시대 개막과 함께 태릉선수촌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 체육계는 올림픽 메달의 산실인 만큼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와 2009년 조선왕릉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때 훼손된 왕릉 주변 복원 약속에 따라 태릉과 강릉(康陵·명종과 인순왕후의 묘) 사이에 있는 선수촌을 철거할 계획이다. 유네스코와의 복원 약속도 지키면서 태릉선수촌의 추억도 보존할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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