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에 여인들 모여
밝은 달빛 아래서 ‘강강술래’
아이들은 뒷동산에 몰려들어
송편·밤·고기·식혜 등 ‘푸짐’
어른들 풍물놀이로 잡귀쫓기
집주인은 먹을 것 내와 잔치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는데, 한반도는 북핵 위기로 여느 때보다 긴장 속에 추석을 맞고 있다. 추석 명절을 쇠는 전통이야 남과 북이 다를 게 없다. 잠시나마 시름을 놓고 한 핏줄임을 상기하고자 남과 북의 작가가 회고하는 추석 이야기를 싣는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한승원(78)은 여전히 작품 활동을 쉬지 않는 남쪽을 대표하는 원로작가다. 함북 청진이 고향인 이지명(64)은 자작농(부농) 집안이었다는 출신 성분 탓에 조선작가동맹 회원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끝내 자유로이 작품을 쓸 수 없었다. 그에 분노해 1998년 탈북을 단행했고, 대륙에서의 방랑생활을 거쳐 남쪽에 정착해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길고 길었던 무더위가 물러간 것이 엊그제인 듯싶은데 황금빛 들판 같은 추석날이 돌아왔다. 섬에서 미역냄새 풍기는 바닷바람을 쏘이며 나고 자란 나는 80을 코앞에 둔 나이임에도 추석이 돌아오면 가슴이 설렌다.
맑고 푸른 하늘과 천강을 비추는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로부터 한가위 축제는 시작된다. 내 고향의 휘영청 밝은 달은 섬을 둘러싼 광활한 바다 수면을 하얗게 밝힌다. 마치 수면으로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모두 올라와 퍼덕거리는 것 같다. 바로 그 수면으로 여인들의 강강술래 소리, 풍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을의 마당 넓은 집으로 모여 강강술래를 하는 여인들은 과년한 처녀들과 시집갔다가 친정에 온 새색시들이다. 그들은 모두 울긋불긋한 추석빔을 차려입었다.
어린 시절 나는 들뜬 마음으로 추석날을 손꼽아가며 기다렸다. 오전에는 땔나무를 해오고, 오후에는 한재 고갯마루로 소를 뜯기러 갔고, 송아지 풀을 베어 망태에 담아놓고, 푸른 벌판에서 놀이를 했다. 서쪽 하늘에 저녁노을이 타오르면 장에 갔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왔다. 그들 틈에 어머니가 끼어 있었다. 어머니는 새 고무신을 사가지고 왔다.
어머니를 뒤따라 소를 끌고 꼴망태 짊어지고 집으로 가면, 시집간 누님과 고모가 추석빔을 차려입고 내 또래의 사촌들을 데리고 친정엘 와 있었다. 누님·고모는 떡이며 대추, 밤, 홍시를 싸들고 왔다. 집 안은 먹을 것들이 풍성해졌고, 친척들로 가득 찼으며, 어린 우리들은 마당에서 서로를 쫓고 쫓기며 깔깔거리고 놀았다.
저녁밥을 먹고 난 누님과 고모는 마을의 강강술래 마당으로 갔고, 우리들은 뒷동산으로 갔다. 뒷동산은 갯마을과 새텃마을 사이에 있었는데, 추석날 밤 두 마을 남자들의 씨름판이 벌어졌다. 씨름은 아기씨름에서 시작되었다. 유년에서 소년으로, 그다음은 열아홉·스물의 약관으로, 막판에는 스물대여섯의 한가락씩 하는 청년으로 나아갔는데, 어느 한쪽이 이길 때마다 ‘어구야’하고 함성을 질러댔다. 장원을 한 사람은 영웅이 되었다.
추석 명절은 깊이 생각해보면 모든 이승사람과 저승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모든 집에서는 조상님께 다례상을 차리고 맑은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음복례를 했다. 육고기, 생선 자반, 수박, 밤, 배, 사과, 대추, 송편, 식혜…. 배가 불룩하도록 먹었다. 어른들은 얼굴이 불콰하도록 맑은 술을 마셨고 우리들은 식혜를 먹었다.
어머니는 송편과 월편을 다 했다. 송편을 빚기 위해 우리는 뒷산에서 참솔 잎을 따왔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바닥에 깔았는데, 송편에서는 솔잎 향이 풍겼다. 월편은 반달 모양새였다.
다음날은 추석빔을 입고 새 고무신을 신고 성묘를 하러 갔다. 그날은 소 뜯기는 것, 꼴 베는 것을 모두 아버지가 하셨으므로 우리들은 뛰어놀기만 했다. 아낙네와 처녀들은 전날 밤늦게까지 강강술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침나절에 또 그 놀이를 했다.
마을 어른들은 회관 마당에서 풍물을 꺼내다가 쳤다. 상쇠는 상모를 돌리고 북과 장구를 둘러맨 사람들은 울긋불긋한 고깔모를 썼다. 술이 얼근해진 구경꾼들은 네 활개를 벌리고 다리를 움죽거리며 보릿대춤을 추었다. 부지깽이로 총을 만들어 어깨에 걸친 포수는 열심히 사냥 솜씨를 보이면서 춤을 추었다.
풍물패들은 마을의 부잣집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쥔쥔 문열어!”를 치고, 잡귀를 쫓아주기 위해 “잡귀잡귀 쳐내세”를 치고, 샘물 앞으로 가서 “펑펑 솟아라”하는 샘굿을 해 쳐주고, 상쇠가 입담 좋게 천지신명에게 비나리를 바쳤다. 그리고 주인이 마당 한가운데 내놓은 술과 음식을 먹었다.
사람들이 모두 엉덩이춤·어깨춤을 추며 즐기는 추석축제는 휘영청 밝은 달을 향해 강강술래와 풍물소리가 사위어 가면서 저물어갔다. 나는 늘 추석날 두 가지 말을 떠올린다.
“일년 삼백예순다섯 날 모두 한가윗날만 같아라.” “삼촌·조카 잘되라고 빌지 말고, 시절 좋으라고 빌라 했느니라.”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