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화가, 서울대 교수

지인 몇이서 올여름 영국의 코츠월드를 다녀왔다. 스완 호텔이라는 전원 속의 작은 호텔에 머물며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고들 얘기해 주었다. 나도 7∼8년 전 다녀온 코스였기에 바이버리, 버튼온더워터, 그리고 스몰토크 티룸 같은 곳의 얘기를 들을 때면 영상처럼 눈앞에 그 모습들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야트막한 돌담길들과 그 돌담을 감아 돌며 흐르는 물 위로 떠가는 오리들이며, 일렁이는 풀밭과 점점이 찍힌 하얀 양 떼의 모습, 파란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 이 같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코츠월드의 자산이다. 이름난 건축물 하나 없는 이 전원 풍경 속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이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이백여 년이나 되었다는 스완 호텔만 하더라도 시골 호텔이지만 몇 달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다. 어쩌면 속도에 중독되고 과다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안식을 찾아다니다가 시간이 정지된 듯한 그곳으로 몰려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코츠월드 하면 떠오르는 비슷한 곳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경남 하동이다. 물론 규모도 작고 분위기도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느낌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 풍광 속에는 여유와 느림, 따뜻함과 아늑함이 함께 있어, 섬진강 물길 따라, 돌담 따라 걷다 보면 또 다른 코츠월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간 용케 난개발의 광풍을 비켜왔다.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을 휩쓴 몇 번의 개발신드롬에도 옛 아름다움을 그만큼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동은 특히 가을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주로 화려한 벚꽃에 취해 봄철이면 그곳으로 몰려들지만, 가을의 고즈넉한 아름다움 또한 일품이다. 여름의 강한 햇볕들에 익어가던 들판의 유실수들이 가을이 되면 제 빛깔들을 내기 시작하면서 그 땅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데 누렇게 익어가는 평사리 들판만 보아도 마음까지 배불러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하동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밤이 툭툭 익어 터지는 그곳의 가을 속으로 걸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게 하동은 풍경만 고운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유독 옷소매를 잡아끄는 정겨운 분이 많이 살고 있다. 처음 내가 하동 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세 번씩 군수를 지내신 조유행 님 때문이었다. 조 군수께서는 온화한 성품의 선비 같은 분이었는데 내 그림을 좋아해서 그 바쁜 와중에도 서울에서 전시를 하면 꼭 구경을 오시곤 했다. 전시장 문이 닫힐 즈음에 왔다가는 밤길로 다시 하동으로 내려가기가 예사였다. 이 분의 바람 중 하나가 전시 보러 서울까지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게 내 작품들을 기증받아 자그마한 전시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사코 나를 명예군민으로 만들어 하동과 연을 맺게 한 것도 그런 속 깊은 이유에서였다. 칠십이 넘으신 그 어른과는 요새도 가끔 집안 형님처럼 통화를 하곤 한다. 군수직에서 물러나신 뒤에도 직접 농사지은 소소한 것들을 정겨운 손편지와 함께 보내주시곤 하는데 고스란히 육친 같은 정이 묻어 있다.

현재 군정을 맡고 있는 윤상기 군수와는 그분이 진주 부시장을 하고 있을 때 문화 강연을 갔다가 처음 만났다. 전임 군수가 모성적 리더십을 갖췄다면 윤 군수는 부권적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하동’을 목표로 다이내믹한 사업을 많이 펼쳐나가고 있는데, 연전에는 광화문에서 ‘왕의녹차’라는 이벤트성 행사를 열기도 했다. 행사 전날 윤 군수는 직접 전화를 걸어와 행사 참여를 독려했다. 행사장에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나를 ‘출향 인사’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악양면장 조문환은 5년여 전 ‘시골 공무원 조문환의 하동편지’라는 책을 펴냈는데, 내가 그 책의 발문을 쓴 인연을 가지고 있고, 이후 그는 나를 깍듯이 집안 형님처럼 예우했다. 조 면장은 무려 2000여 명에게 2년여에 걸쳐 ‘하동편지’를 써 보냈고, 시인이자 사진작가의 이력답게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을 그 편지글에 섞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특히, 그의 ‘하동편지’는 각자의 고향을 두고 대도시로 떠나온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좋은 반향을 얻었고, ‘하동편지’는 그 반향에 힘입어 단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출간되었다. 하동이 전국적 고향이 되어 버린 것도 그가 2년에 걸쳐 띄운 아름다운 사진과 사연들에 힘입은 바 크다.

악양면사무소 앞에서 차(茶) 박물관을 하시는 강화수 어르신도 인품의 향기가 묻어나는 분인데 이제 아마 구십을 넘기셨을 것 같다. 그곳은 내가 본 가장 격조 있는 박물관 중 하나였다. 오래전, 일본 여행 중 인상 깊은 차 박물관을 본 적이 있는데, 결코 뒤지지 않았다. 같은 악양면의 조한송 어르신은 조선 초 영의정을 지낸 조준 대감의 후손이신데, 작고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기에 연세가 지금 아마 구십 대 중후반쯤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크고 너른 옛 조 씨 고가를 홀로 지키시며 하동 상징 문암송(松)처럼 그 기상이 대단한 어른이시다.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고향상실증후군을 앓고 있다. 풍경은 속절없이 변하고 옛사람들은 떠나고 없다. 하지만 하동은 드물게 우리가 두고 온 그 고향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풍광뿐 아니라 인정 또한 옛 고향 모습 그대로 따사롭기 그지없다. 나이가 들면 풍경보다는 사람에게 끌린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하동을 그리워하는 것도 거기에 풍경 못지않게 정겨운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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