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혁신위원으로 참여한 지 벌써 석 달째에 접어든다. 홍준표 대표는 혁신위원으로 임명하며 ‘30년 좌파’라고 소개했다. 조금은 과장된 기간이지만 어쨌든 짧지 않은 시간을 진보-민주파 진영에서 보낸 것은 사실이다. 생전 처음 보수 진영에 들어가 보니, 진영 간 갈등의 골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혁신위원회는 각계 단체의 보수 인사들을 모시고 몇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보수의 위기를 타개할 방도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자리였다.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증오심에 가득 차 좌파 진영을 맹성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인터넷·교육·문화·언론 전반에 걸쳐 진보 좌파세력에 우리 사회가 잠식됐다는 인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 운동권들처럼 선전·선동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광우병 파동에서부터 최근 사드 문제에 이르기까지 좌파 운동권 세력이 그동안 보여준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선동을 보면, 보수 진영이 갖는 이러한 인식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보수 정치권 핵심에까지 이런 피해 의식이 뻗쳐 있다는 데 있다. 국정원 댓글 조작, 문화계 블랙리스트, 언론 개입 등 그동안 보수 정권에서 자행된 파행적 행태가 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의 관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좌파 운동권을 미러링한다고 보수의 위기가 타개될지는 의문이다. 대중 동원과 선동은 보수가 더 잘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좌파 진영의 무책임한 선동과 포퓰리즘 정책 남발은 그들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다.
보수가 오랫동안 국민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나라를 일으키고 발전시켰던 이승만, 박정희를 상징 자본으로 삼았기에 국민이 보수 세력에 거는 기대는 좌파 운동권과는 다른 방향에 있다. 책임 있는 현실주의 정책, 국가 발전 비전과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내부 현실은 엄중하다. 경제적으로는 십수 년째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사회적으로는 양극화로 계층 분열의 양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국민이 보수 진영에 해법을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는 명확하다. 국가 비전 제시와 사회통합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신을 계승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건국 당시 토지개혁은 시대정신이면서도 좌익이 선점한 의제였다. 그런데도 이승만 대통령은 과감히 수용하고 공산당 출신 조봉암을 등용해 지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토지개혁을 완수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 비전을 제시하여 ‘잘살아보세’라는 국민의 자발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며 경제 기적의 금자탑을 세웠다.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이 주도한 정책과 비전은 선대와 비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4대강 사업이 국가 비전이 될 수 있었을까? 실체조차 불분명한 ‘창조경제론’에 기대를 건 국민이 얼마나 됐을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좌우파 기득권과 단절할 용기 또한 없었다. 급기야 최순실 사태로 인해 최소한의 도덕성과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믿음마저 산산 조각이났다. 한마디로 보수는 보수로서의 역할에 실패해서 무너진 것이다.
보수는 피해의식이 아니라, 자성의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좌파를 볼 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그것이 보수의 살길이며 국민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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