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환 문화엑스포 사무처장

서기 1226년 한 나라의 왕자가 자국의 난을 피해 먼 바닷길을 헤쳐 한반도의 옹진 땅에 정착한다. 그는 베트남 리 왕조 6대 황제의 7번째 아들 이용상 왕자로 왕조의 몰락과 함께 고려에 들어왔다. 8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땅에는 2000여 명의 후손이 ‘화산 이씨’로 살고 있다.

오는 11월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리는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 기간 동안 호찌민 오페라하우스에서 이용상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 무용극 ‘800년의 약속’이 무대에 오른다.

이용상 왕자가 고려에 정착하기 1세기 전인 1127년에는 리 왕조 인종의 아들 이양혼 왕자가 북송을 거쳐 고려에 들어왔다. 그는 경주에 거주하다 정선으로 이거했으며, 후손들이 정선을 본관으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정선 이씨의 시조가 된 이양혼 왕자의 한반도 정착으로 시작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900여 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쓰고 있다.

이런 오랜 인연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문화적으로 많은 부분이 닮았다.

두 나라는 유교 사상을 중시하는 전통에 따라 가족 및 공동체를 중시하고 부모를 봉양하며 명예를 중시한다. 또 두 나라 모두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으로 식민 지배를 받아온 아픔과 저항운동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냉전 시대를 지나며 두 나라는 모두 분단과 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지니고 있다.

질곡의 역사를 이겨낸 두 나라는 21세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 수교 25주년을 맞은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는 2001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 2009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등으로 빠르게 격상됐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적 관계는 ‘눈부시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10대 교역국에 들며 상호 3∼4위의 수출·투자대상국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4000개를 넘으며,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이 열리는 호찌민시 인근에도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다.

베트남 내 우리 교민 15만 명, 한국 내 베트남인 15만 명으로 2016년 국내 체류 베트남인 숫자가 미국인을 제치고 중국인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한·베 간 국제결혼인구만 5만 명 이상으로 ‘사돈의 나라’로 일컬어질 정도다.

최근 한국 언론에서는 ‘베트남’을 언급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국제뉴스, 경제뉴스뿐만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베트남 여행, 베트남 음식을 자주 소개하는 것을 접하며 베트남이 아주 가까운 나라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우호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1월 호찌민에서 열리는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은 가장 대표적인 한·베 문화교류 행사다.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2013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글로벌 문화축제를 장기간 개최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로 성장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호찌민에서 23일간의 메가 이벤트를 개최하게 됐다. 이를 통해 지난 기간 경제적 관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우리나라와 베트남 사이에 문화를 매개로 한 새로운 이정표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됐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경제 중심으로 발전해온 양국의 관계가 문화교류를 성숙시키고, 이것이 다시 경제적 효과를 생산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면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7’은 국제문화행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모델로 인정받아 그 역사를 계속 써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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