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을 맡고 있던 한달삼 김포시사이드CC 회장과 라운드하던 때로 기억됩니다. 한 회장이 그늘집에서, 일행들 앞에서 대뜸 자신의 홀인원에 얽힌 얘기를 꺼냈습니다. 구력 20년에 3언더파 69타까지 쳤던 그였지만 홀인원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것이죠. 한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골프장의 ‘월요 휴장일’을 택해 아침부터 홀로 남 코스 3번 홀(파3)에서 수백 개의 공을 쳤다고 합니다. 물론 ‘골프장 오너’였기에 가능했던 호사였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면 홀인원이 될지 궁금했던 것이죠. 손에 물집이 잡힐 만큼 쳤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한 회장은 이런 실험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행운을 안았다고 합니다. 한 회장은 2001년 9월 수백 개의 공을 쳤던 바로 그 ‘남 코스 3번 홀’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경험했습니다. 뒤이어 2002년 2월 남 코스 6번 홀에서 5개월 만에 거푸 행운을 잡은 것이죠. 홀인원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골프에서 홀인원은 여러 가지 이론이 존재하지만, 확률로만 따지면 로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미국 골프전문 매체 골프다이제스트는 프로 선수들의 홀인원 확률이 3000분의 1, 일반 골퍼는 1만2000분의 1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기자가 그동안 만난 취재원 중에서 홀인원 경험을 한 골퍼는 예상보다 적었습니다. 클럽챔피언을 섭렵하거나, 언더파를 치는 ‘아마고수’들 중 홀인원을 경험하지 못한 골퍼는 흔합니다. 반면에 100타를 치면서 머리 얹은 지 두 번째 라운드에서 홀인원을 뽑아낸 행운의 초보 골퍼도 봤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골퍼는 골프공을 제조하는 50대 초반의 남상길 씨입니다. 10대 후반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는 그는 ‘국내 최다’인 21차례 홀인원의 주인공이 됐고, 소개 기사가 나간 뒤 1년 만에 22번째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웨딩 사업가였던 이영란 씨는 홀인원을 9차례나 작성했는데 이 중에는 사인을 주며 기다리던 앞 팀 골퍼를 맞힌 티샷이 홀로 들어가는 기막힌 홀인원도 있었습니다.

최근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활약 중인 이탈리아 출신의 에두아르두 몰리나리가 한 회장처럼 온종일 한 홀에서 ‘홀인원 챌린지’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유럽투어에서 3승을 거둔 실력파인 몰리나리는 145야드짜리 파 3홀에서 9번 아이언으로만 500개의 공을 치며 홀인원 도전에 나선 거였죠. 500번의 샷 중에는 핀을 맞히거나 홀 10㎝에 붙이는 샷도 여럿 연출했지만, 결과는 단 한 개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홀인원을 기량이 아닌, 행운의 상징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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