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식(왼쪽) 극작가와 최우정 작곡가가 16일 서울 돈화문국악당 앞뜰에서 첫 호흡을 맞춘 작품 ‘적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배 작가는 찰지면서도 깊은 인간애를 담은 대사로, 최 작곡가는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배삼식(왼쪽) 극작가와 최우정 작곡가가 16일 서울 돈화문국악당 앞뜰에서 첫 호흡을 맞춘 작품 ‘적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배 작가는 찰지면서도 깊은 인간애를 담은 대사로, 최 작곡가는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음악극 ‘적로’ 내달 3일 개막
배삼식 작가·최우정 작곡가


1941년 초가을 경성.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 진도로 내려갈 채비를 하던 대금 명인인 박종기와 열두 살이나 어리지만 그의 음악을 가장 잘 알아주던 김계선,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기생 산월. 이들의 처연한 것 같으면서도 담담하고, 티 없이 맑은 것 같으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아담한 무대에서 관객석을 향해 있는 그대로 퍼져 나간다.

공연계에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극작가 배삼식(47)과 작곡가 최우정(49)이 처음으로 뭉쳤다. 서울 돈화문국악당이 개관 1년여 만인 내달 3일 막을 올리는 자체 제작 브랜드 공연 ‘적로’(사진)에서다. 김정승 국악당 예술감독의 요청으로 먼저 극에 합류한 최 작곡가가 배 작가를 추천하면서 공동 작업이 성사됐다. 16일 국악당 연습실에서 만난 최 작곡가는 “음악극을 하는 이상 배삼식 작가와는 꼭 한번 해볼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느껴 왔다. 대본 자체에 음악적 형식감이 있는 거의 유일한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배 작가는 최 작곡가의 바람대로 시적이면서도 때로는 조약돌처럼 단단한 대사로 극 속 두 주인공의 굴곡진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적로는 일제강점기 ‘필멸의 소리로 불멸의 예술을 꿈꾸던’ 두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박종기는 대금산조의 창시자이자 진도아리랑을 창작한 인물이며, 김계선은 궁중의 악사 신분으로 민요, 무가 반주 등을 가리지 않고 활동한 이단아. 배 작가는 “작품이 두 분이 남긴 삶의 흔적에서 출발하지만 역사적 고증이 목적은 아니다”라며 “삶이 잠깐 사이에 왔다가 지나간다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끼고, 그래서 그 순간에 미친 듯이 충실했던 사람들이라는 데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사람이야 사람의 일이야, 달빛에 맺히어서 새벽바람 내렸다가, 햇빛에 돌아가는 한 방울 이슬이로다.한 숨결에 일어나서 한 시절을 노니다가, 자취 없이 흩어지는 한 자락 노래로구나” 적로의 ‘세월은 유수와 같이’ 중 한 대목이다.


배 작가가 “아랍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모든 낮과 밤, 희미한 갈대 소리, 그 음악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에서 영감을 받아 대본을 썼다”고 덧붙이자 최 작곡가는 “극 중 대금과 클라리넷을 같이 연주하는 부분이 있는데, 대금은 물론 클라리넷도 리드(reed)를 갈대로 만든다. 악기 편성에도 그런 함축적 의미들이 숨어 있다”고 귀띔했다.

적로는 극적인 사건이나 뚜렷한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곡은 배 작가가 먼저 노랫말을 쓴 후 최 작곡가가 음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음악을 보면 적로가 대금 명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창극이나 판소리극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를 알 수 있다. 17개 곡 중 판소리가 들어간 것은 손에 꼽을 정도고, 당시 대중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녹아 들어있기 때문. 전통적인 소재를 서양 음악과 결합시켜 세련되고 대중적인 어법으로 풀어낸 것은 최 작곡가의 기량이다.

그는 “극 속에서 한국의 여창가곡을 19세기 서양 예술가곡과 결합하는 건 저로서도 처음 해보는 시도”라면서 “판소리와 대중음악을 결합하는 시도는 많이 있어도 여창가곡과 19세기 서양 클래식 가곡을 연결하는 작업은 거의 없었는데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음악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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