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먹거리’ 전도사 이계호 충남대 화학과 명예교수
“‘태초 먹거리’ 강의를 시작한 지 만 7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4시간짜리 무료 강의를 108회 했습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의 절반은 암 환우입니다. 태초 먹거리 학교 홈페이지에서 수강 신청을 받는데 워낙 신청자가 밀려 수강 대기인 수가 최고 3000명까지 밀릴 때도 있었죠. 할 수 없이 100명 이상씩 수강자를 모아 대형 강의를 해야 하는데 이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의 공간을 대관하는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죠.”
이계호(64) 충남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TV 건강 프로그램과 대중 강의의 스타 강사다. 암을 예방하는 건강 식단과 자연 치유법 등을 설파하는 건강 전도사로 잘 알려져 있다. 월평균 10여 회 전국을 돌며 건강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7월 충북 옥천에 ‘태초 먹거리 학교’를 세운 설립자이기도 하다. 분석 화학자다운 해박한 이론과 지식, 암으로 세상을 떠난 딸의 투병 과정을 겪으면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건강 강의는 독특하면서도 특별하다.
지난 13일 인터뷰를 위해 충북 옥천에 자리 잡은 태초 먹거리 학교를 찾았다. 전원주택처럼 지은 학교는 이 교수가 일주일에 두 번 찾는 곳이다. 학교 주변 5000평 규모의 넓은 밭은 그가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한 ‘태평 농법’으로 기르는 각종 농산물이 자라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IC에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태초 먹거리 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 기성세대는 앞만 보고 달렸고, 결과만 갖고 평가했습니다. 과정이 무시되고 기본이 무시됐죠. 건강도 무리하면서 생긴 증상을 비법과 특효약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증상 치료는 전문의가 하지만 원인 치료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비법과 특효약이 있더라도 그 사람 생활 속 질병의 원인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면 병은 재발하게 돼 있습니다. 태초 먹거리 학교는 건강을 회복하는 기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의 신념은 후성 유전학(epigenetics)적 건강법이다. 먹거리, 생활습관, 환경 등 3가지를 잘 ‘컨트롤’하면 유전적 요인으로 타고난 암, 당뇨 등 질병 유전자의 발현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공식품을 피하고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것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이 좋다는 의미에서 태초 먹거리라는 말도 만들었다.
“당뇨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가 있었어요. 유전자는 동일하지만 헤어져 자란 지 수십 년 뒤 형은 멀쩡한데, 동생은 중증 당뇨 환자가 됐습니다. 유전자가 동일한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형제의 삶을 분석해보니, 먹거리·생활습관·환경이 완전히 달랐어요. 이 3가지가 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켤 수도, 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정년을 2년 앞둔 63세의 나이로 국립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명예 퇴임했다.
“7년간 태초 먹거리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연구 등 본업에 소홀하기도 했고, 제약도 많이 느꼈습니다. 왜 그만두느냐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종의 사회운동인 ‘태초 먹거리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지난해 1989년부터 27년간 봉직해온 충남대 교수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 방송사, 자치단체, 기업, 단체들의 건강 관련 특강 요청을 월평균 15∼20건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돈을 받지 않는 무료 강의다. 방송 출연 횟수도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우리 사회에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분출하고 있고, ‘건강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인 시대라는 얘기다.
“저를 의사나 대체 의학자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료법을 상담하고 치료법을 묻는데 그것은 제 분야가 아닙니다. 뷔페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면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제가 고르는 음식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처럼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다는 이유에서죠. 제가 특별히 좋은 음식만 먹는 줄 지레짐작하기 때문입니다. 제 식단은 진짜 평범합니다. 균형 있게 소식을 실천할 뿐, 특별히 이것저것 챙겨 먹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강의에 몰려들지만, 사실 그가 내세우는 건강법에는 비법이나 특효약이 없다. 오로지 ‘기본을 지키라’는 단순명쾌한 얘기가 전부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7000달러 시대에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겼지만, 그가 보는 한국인 건강지표는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 공식 통계로 3명당 1명이 암에 걸리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또, 대장암 발병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작년 기준으로 10만 명당 45명이 발병했는데, 전 세계 평균 17명의 2.7배입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보다 발병률이 2배 높아요. 대한민국 남자는 세계 최고의 대장암 위험군이지만,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돈이 되는 암 발병 후 치료에는 관심이 있지만, 예방 쪽은 돈이 안 되니 사회적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한국인 식단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기본이 다 무너져 있습니다. 이러다 국민 2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지옥 같은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교수는 우선 고기를 한꺼번에 몰아서 먹는 식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60㎏ 체중의 성인의 1일 단백질 필요량은 60g 정도인데 ‘배 터지게 실컷 먹어라’가 미덕이었던 기성세대 음식 문화의 시행착오가 10대 청소년들에게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최고의 대장암 발생국이라는 오명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나눠 먹자는 것”이라며 “고기를 한꺼번에 몰아서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으로 생긴 체내 초과 단백질이 소변으로 배출될 때 어마어마한 독성물질이 나오고 이것이 채식 위주로 최적화된 기다란 장 구조를 가진 한국인들에게 대장암 발생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의 지독한 마블링 사랑도 문제다. “소고기도 마블링 있는 부위만 찾고, 돼지고기도 삼겹살만 선호하는 식습관이 문제입니다. 맛의 기준이 잘못됐습니다. 과다 지방 섭취는 담즙 과다 분비를 유발하고 결국 장 건강을 해쳐 대장암의 원인이 됩니다.”
그가 제안하는 첫 번째 기본은 ‘미각의 회복’이다. “TV만 틀면 ‘먹방’ ‘쿡방’ 프로그램이 나오고 이에 열광하는 사회는 지혜롭지 못합니다. 기름 맛, 고소함을 맛의 기준으로 삼는 데 잘못됐습니다. 당근의 원래 맛, 케일의 원래 맛, 상추의 원래 맛을 알아야 합니다. 된장 소스나 샐러드드레싱 대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기 위해서는 오래 씹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5분 이내에 후딱 먹는 습관을 바꾸고 음식을 입에 넣고 30∼50회 씹는 연습을 해보면, 저절로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기 단백질 섭취문화를 콩 단백질로 바꿔야 한다는 것도 그의 소신이다. 콩은 고기보다 단백질이 2배 많고 장 건강 회복을 돕는다. 대장에 존재하는 유산균의 먹이가 당인데 콩에 풍부한 올리고당은 소장에서 분해돼 버리는 포도당과 달리 대장까지 도달해 장내 유익균을 활성화시킨다. 이 교수는 전북 순창군과 함께 콩을 발효한 청국장 균주 제조공정 표준화 연구를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다.
그는 오후 9시 이후 고기 야식은 가장 잘못된 식문화라고 지적했다. 한국 특유의 밤 음주 문화와 배달 음식 문화로 밤늦게까지 육류를 먹으면 잠자는 중에도 장이 일해야 돼 결국 장에 무리를 준다는 것이다.
20대 꽃다운 나이의 딸을 암으로 떠나보낸 아버지로서 이 교수는 암 환자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 교수는 “딸이 투병 생활 동안 겪었던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암 환자들도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며 “항암제, 방사선, 수술 등 표준치료를 마치면 다 낫는다고 착각하는데 암에는 완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암 환자들의 발병 원인은 그 삶 속에 원인이 있는데 몸 상태가 나아지고, 암세포가 사라졌다고 해서 다시 원래 삶과 습관으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천=김창희 기자 c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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