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현 씨가 지난 7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후원 아동 그레이스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이다현 씨 제공
이다현 씨가 지난 7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후원 아동 그레이스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이다현 씨 제공
4년째 해외 후원 이다현 씨

‘21세 여름의 케냐, 내 생에 가장 특별한 만남.’

지난 7월,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뜨거운 적도의 태양은 한국에서의 태양과는 또 달랐다. 그레이스(여·13)를 만난다는 생각에 이다현(여·21) 씨는 ‘적도 태양’의 뜨거운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생각보다 많이 컸다. 그레이스가 9세이던 4년 전 겨울, 해외 불우아동 결연으로 첫 인연을 맺었던 이 씨와 그레이스의 만남은 의외로 무척 어색했다고 한다. 편지로만 얘기를 나눴으니 그도 그럴 만했다. “처음 그레이스를 만났을 때,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정말 기대했던 일인데, 막상 그 시간이 되니 뭐랄까 너무 부끄럽고 떨리더라고요. 호기심 넘치는 그레이스의 표정을 보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후원을 시작할 때 ‘뭔가 좋은 일을 하면 기록으로도 남고 좋겠지’라는 단순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 마음이 생각나서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이 씨는 1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레이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씨와 그레이스의 어색만 첫 만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둘은 이내 오래된 친구처럼 같이 햄버거도 먹고 ‘셀카’도 찍었다. 그 자리에는 그레이스 엄마도 나왔다. ‘후원’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그레이스와는 달리, 그의 엄마는 매 순간 이 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그레이스와 이 씨가 같이 찍은 사진에 직접 그레이스 이름을 쓴 뒤, “그레이스는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후원자님께도 항상 영광이 함께하길 기도할게요”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런 모습에 이 씨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그레이스를 처음 알게 됐던 고1 시절. 이 씨에게도 적잖은 문제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한 달 이상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큰일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했던 친구들과도 소원해지는 일이 있었다. 모든 걸 떨치고 떠나고 싶었다. ‘질풍노도’ 시기의 방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씨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눈치챈 담임 선생님이 구청에서 운영하는 해외 자원봉사 활동 자원을 권고했다. 몽골에서 문화체험도 하고 사막화 방지 활동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몽골에 가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에도 개인적으로 기부활동을 해 왔었는데, 몽골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부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몽골에 다녀온 이후 이 씨는 많이 변했다. 그레이스에 대한 후원을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고1 때 용돈이 한 달에 5만 원이었어요. 그중에 1만 원을 그레이스를 후원하는 데 기부했죠. 당시에는 나름 큰돈이었어요. 두 달을 고민하던 끝에 결심하게 됐어요. 다행히 학교와 집이 가까워 교통비가 들지 않아 기부금을 낼 수 있었죠.”

그렇게 맺어진 그레이스와의 인연. 처음 그레이스의 편지를 받았을 때 이 씨는 기분이 묘했다고 회상했다.

“설레기도 하고, 왠지 모를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졌어요. 돌이켜보면 몽골에서의 경험과 그레이스와의 인연이 당시의 제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거든요.”

위기도 있었다.

“고 3 때였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후원금 통장에 몇 달 동안 돈을 넣어두지 못한 적이 있어요. 공교롭게도 후원금이 미납됐다는 편지와 그레이스의 편지가 비슷한 때 왔어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다시 한 번, 후원에 대한 책임감을 다진 계기였어요.”

불우한 환경의 그레이스처럼 이 씨 역시 아픔을 갖고 있다. 턱관절이 한쪽만 비대해지는 선천성 증상을 앓고 있다. 얼마 전 턱관절 수술을 받고 지금은 휴학 중이다.

“케냐에서 그레이스를 만났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제대로 얘기를 못 나눴어요. 휴학 중인 틈을 타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레이스가 저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도 해 준 셈이죠.”

그레이스가 더 클 때까지 후원을 계속하겠다는 이 씨는 국내 무연고 아동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임대환 기자 hwan91@
임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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