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친구가 어려운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친구 내외는 효심이 깊어 어머님을 잘 모셔왔는데 그즈음에 어머님이 기억력도 떨어지고 이상한 말씀도 하시고 해서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 어머님은 친정에 가끔 들르는 딸들에게 “며느리가 밥을 챙겨 주지 않는다” “내게 섭섭하게 한다”는 등의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고 친구는 하소연했다. 처음에는 흘려듣던 딸들도 올 때마다 이상한 말들을 듣게 되니 점차 형제간에 사이가 멀어지고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는 지경에까지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노인요양병원과 같은 요양 프로그램도 없어서 친구는 정말 어렵게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듯했다. 당시에도 정신병동에 입원시켜 치료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박봉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어머님의 이상증세를 잘 모르는 형제들 사이에 불화까지 겹쳐, 가족관계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일단 전문의와 상담해서 약도 쓰고, 형제들에게 설명도 잘하고, 재가(在家)치료라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 얘기도 해야겠다. 2001년 6월 15일은 나를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 주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다. 1911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91세가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낙천적이고 희생적이며 남에 대한 배려도 깊은 분이셨다. 그런데 85~86세 되면서 이상한 말씀을 하시고, 우리를 쳐다보는 자애로운 눈빛이 약간 이상하게 바뀐 것을 보고 나는 의사로서 ‘아하, 올 것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누님께 의논을 드렸다. 큰누님은 90대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어머니를 누님 집으로 같이 모시고 지내면 된다고 하셨다. 요양보호사의 보호가 필요한 연세의 큰누님이 두 할머니의 요양보호사 역할을 하고, 나는 맛있는 음식만 챙겨드리는 생활이 지속되다가 어머니는 타계하셨다.
나와 친구 외에도 전국적으로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았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족이 붕괴되는 고통을 받았겠는가? 노인요양에 관한 사회보험제도가 도입되고 이것이 진화해 이제 이런 고통이 많이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부는 최근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오는 12월 전국 보건소에 252개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여 맞춤형 사례 관리를 하며, 365일 24시간 상담 가능한 치매 핫라인도 구축될 예정이다. 그리고 장기요양 등급 확대, 치매안심요양병원 확충, 요양비와 의료비 부담 대폭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국가에서 치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지원한다고 하니 이제는 치매로 인한 가족 붕괴는 ‘옛일’이 돼 간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적으로 하나하나 제도를 갖춰나가는 것과 함께 온 국민이 치매 예방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부산보훈병원은 ‘치매예방수칙 3·3·3’을 만들어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걷고, 생선과 채소를 골고루 먹고, 부지런히 읽고 쓰기는 ‘3가지 즐길 것’이다. 술을 적게 마시고, 담배를 피우지 말고,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기는 ‘3가지 참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가족·친구들과 자주 소통하고, 매년 치매 조기 검진받기는 ‘3가지 챙길 것’이다. ‘치매예방수칙 3·3·3’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치매 예방 노력을 통해서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하고 심지어 붕괴시키기도 하는 질병 1위인 치매를 물리치고 늦춰 나가야겠다.
주요뉴스
시리즈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