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지난해에 공포로 다가온 ‘알파고’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19일 과학전문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인간이 기보(棋譜)를 제공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하는 ‘알파고 제로’가 매우 빠르게 학습돼 기존 알파고를 뛰어넘었다고 발표했다. 진정한 인공지능이 등장해 이제 스카이넷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까지 술렁이는 사람도 있다.

논문에서 알파고가 스스로의 스승이 됐다는 표현은 상당히 시적인 은유로 보인다. 알파고는 기본적으로 바둑의 규칙에 따라 둘 수 있는 모든 지점의 승률을 계산해서 가장 승률이 높은 지점에 다음 수를 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알파고 제로는 기보를 사용하지 않고 강화학습만으로 이 함수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기본 데이터로 조정되지 않은 무작위 함수에서 시작해서 적은 계산만으로 최적함수를 찾는 공학적인 방법을 만든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지식 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인공지능이 가능해진 걸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나 침소봉대에 가깝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논문의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이번 결과는 오직 바둑 게임에서만 가능하다. 알파고 제로가 바둑의 규칙을 스스로 알아냈다든지 바둑 외의 분야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결국, 알파고 제로가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둑의 규칙에 따르는 틀이 필요한데, 그건 똑똑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프로그램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걸 만들지 못했을까? 막연히 어려우리라 생각하고 포기했거나 기본 아이디어의 제시에 머물고 끝까지 가지 않았다. 최근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공지능 전공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막상 준비된 사람도 없고 있더라도 몸값이 너무 높다고 불평한다. 지난 수십 년간 등한시한 결과인데 지금부터라도 산·학·관이 힘을 모아 인공지능 기술을 연마하고 소프트웨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사실, 알파고 제로도 기술 자체는 모두 공개된 것이고 필요한 인공지능 기술의 대부분은 오픈 소스로 공개돼 있어 따라가지 못할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능숙하게 다루고 방법을 최적화하는 노하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아직 구글 딥마인드조차도 이 기술로 실질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까지는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술의 핵심을 꿰뚫고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개발자의 능력을 결집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이런 방식으로 풀 수 있는 의료·법률·투자·예측과 같은 현실적 문제를 발굴하고 궁극적으로는 불치병이나 에너지 문제와 같은 인류의 난제를 풀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인공지능의 기술력 확보를 위해 우수한 인재가 창업해 확보한 기술을 대기업이 건전하게 인수·합병하는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정하는 한편,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컴퓨팅 환경을 구축해 제공해야 한다.

이번 알파고 제로의 학술적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바둑의 영역에서 기보를 제공하는 지도학습을 뛰어넘는 강화학습 방법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유용함에 틀림없다. 다만, 왜 우리는 못했는지 자괴감에 사로잡힌다든지 실체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기보다는, 기술의 의미와 시사점을 이해하고 냉철한 자기반성과 함께 활용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과 고령화를 타개하기 위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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