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한림대 교수 정치학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건설 재개’를 결정하고 정부에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권고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문 대통령은 공론화위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제도이자 숙의(熟議)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공론화위를 통한 정책 결정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우선, 어떤 선발 절차를 거쳤든 간에 공론화위는 법적 근거가 없는 초법적 기구다. 또, 공론조사의 결과를 곧바로 국가 정책으로 한다는 것도 초법적이다. 나아가 원전 건설이라는 국가적 사안을 공론화위에 맡긴 것은 정부의 책임 회피이며, 책임정치에도 어긋난다. 선거 공약을 실천해야만 하는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공론화위는 지지도가 떨어지는 결정을 대신해 주는 수단일 뿐이다.

다음으로, 숙의민주주의는 시민이 공론조사나 심의 투표에서 공공선이나 공적 가치를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시할 것을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정은 틀렸다. 논쟁의 여지 없는 공공선(公共善)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공공선을 위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탈원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산화탄소(CO2)를 가장 적게 발생시키는 원자력 발전이야말로 진정한 환경보호라고 주장하는 마이클 셸런버거와 같은 환경운동가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개개인의 공공선은 상이하다.

그렇다면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공선이 있느냐 여부에 더해, 그런 공공선이 있다 하더라도 인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 설령 공공선을 인지한다 하더라도 실제 정치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느냐의 과제를 생각한다면, 대의민주제가 최선이라는 조지프 슘페터의 지적은 옳다. 대의민주제는 시장과 같이 경쟁하는 정치인들이 제공한 공약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론화위의 사례로 볼 때 숙의민주주의의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 한 번의 실험으로 1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했고, 3개월 이상 공사를 중단시켜 시간을 낭비했으며, 수조 원의 해외 원전 수주 가능성을 없애 버렸다.

사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제1당이지만 과반 의석을 점하지 못하고 있어 국회를 우회해서 공론화위에 맡긴 것이다. 대의정치의 측면에서 본다면 ‘탈원전’ 정책은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하고 전문가 자문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었다. 국회를 패싱한 것도 문제지만, 법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공론화위가 국민의 이름으로 권고안을 냈음에도 국회가 수수방관하는 것도 괴이하다.

북유럽, 영국, 미국 등 선진 민주국가들 가운데 주요 정책에 공론조사와 같은 숙의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는 국가는 없으며, 직접민주주의를 가장 많이 도입하고 있는 스위스조차 중요한 결정은 3개월마다 시행하는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도 문 정부가 공론화위 방식을 검찰과 경찰 개혁에 다시 사용하고, 또 앞으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를 출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심각하다. 모든 민주제도는 법에 근거해 시행돼야 한다. 따라서 숙의민주주의라 할지라도 탈법은 안 된다. 공론조사의 의제·방식·비용 부담에 대한 원칙들을 법제화한 후에 시행해야 한다. 정부는 속히 공론화위의 법적 요건을 갖춰 정당성과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 절차이며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준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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