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창헌 일병 영웅 귀환행사

“남편 떠난 후 10일뒤 딸 출산
유해라도 찾으니 너무나 감격”


6·25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려 만삭의 아내를 남겨두고 입대했던 김창헌 일병이 66년 만에 94세가 된 아내와 66세가 된 딸의 품으로 돌아왔다.

24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1951년 8월 강원 인제군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창헌 일병(1924년생)의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 시 관을 덮을 태극기, 함께 발굴된 인식표, 도장 등 유품(아래 사진)을 김 일병의 아내 황용녀(94) 씨에게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황 씨 자택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황 씨는 “남편이 6·25전쟁으로 자원입대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남편은 복중의 아이를 남자로 생각해 ‘김인석’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고, 10일 후 딸이 태어났다”며 “남편이 소중히 지어준 아이 이름을 바꿀 수 없어 아들 이름이지만 그대로 쓰고 있다”고 오열했다.

황 씨는 “남편이 떠난 뒤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을 하며 홀로 딸을 키웠다”며 “이제라도 남편의 유해를 찾아 만나 볼 수 있어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

김 일병은 1944년 4월 결혼하고 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전쟁이 벌어지자 1951년 1월 28세의 나이에 자원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에 배치됐다. 1951년 7월 10일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으나 공산군 측의 무성의로 회담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고지쟁탈전인 2차 노전평 전투 중 김 일병은 적의 총탄에 사망했다.

김 일병 유해는 2017년 7월 5일 서화리 무명 900고지 일대에서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0184968)와 한자로 새겨진 도장,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그러나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위)는 끝자리가 불명확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웠고 도장도 함께 발굴됐지만 60년이 지난 도장의 한자 색인도 불명확해 병적자료 분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탐문 끝에 군번과 이름을 확인했고, 딸 김 씨가 2008년 6월 국군수도병원을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둔 덕분에 감정 결과 9월 25일 최종 부녀 관계를 확인했다.

김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국유단 단장인 이학기 대령은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전사자 분들이 아직도 12만3000여 위나 된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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