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신흥로의 ‘해방촌 오거리’ 인근 신흥시장 전경. 진열된 상품이나 간판만 보면 영락없이 지방 소도시 재래시장이다. 김동훈 기자 dhk@
서울 용산구 신흥로의 ‘해방촌 오거리’ 인근 신흥시장 전경. 진열된 상품이나 간판만 보면 영락없이 지방 소도시 재래시장이다. 김동훈 기자 dhk@

“도시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있어야 한다. 오래된 건물이 없다면 아마도 활기찬 거리는 물론이고 지구의 성장도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오래된 건물이란 박물관급의 건물, 즉 많은 돈을 들여서 복원한 훌륭한 건물이 아니라 낡아빠진 노후한 건물까지 포함한 평범하고 흔한 별 가치가 없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도시계획가인 제인 제이컵스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에서 느끼는 감성적인 면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막대한 신축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올라간 비싼 임차료를 낼 수 없는 수익성이 낮은 구멍가게, 이발소, 구두 수선집들을 더 이상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게 되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낡은 건축물을 헐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만으로 도시환경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물리적인 환경은 개선되었을지 모르지만, 전보다 더 비싸진 임차료 때문에 가게주인들은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을 올리거나 서비스의 질을 낮추어야 수익을 맞출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 어려운 가게들은 더 싼 동네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적자생존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게 되는 가게들은 늦은 밤, 출출함을 해결하는 동네 분식점이거나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 지체 없이 나타나 문을 열어주는 열쇠 수리, 급하게 아이들의 학교준비물을 살 수 있는 문구점처럼 가까이에 있으면서 꼭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던 소중한 가게들이다.

주민들의 삶 일부를 채워주던 작은 가게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면서 삶의 다양성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수익성을 채우기 위해 크고 화려한 시설들은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서점으로 가야 했고 일용품도 박스 단위로 살 것을 권유받는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예전부터 그랬듯이 주민들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는 곳이 있으니 해방촌의 신흥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해방촌 신흥시장은 ‘포스트 경리단 길’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신흥로의 가장 북쪽인 해방촌오거리에서 용산고등학교 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토요일 저녁, 녹사평 대로에서 시작하는 신흥로의 화려함과 분주함과는 달리 신흥시장의 입구는 한산하고 어둡다.

1970년대나 1980년대의 가게를 연상시키는 쇠락한 모습의 점포들. 그래서 더욱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김동훈 기자 dhk@
1970년대나 1980년대의 가게를 연상시키는 쇠락한 모습의 점포들. 그래서 더욱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김동훈 기자 dhk@

시장건물 하부에 뚫린 입구의 경사를 오르면 시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어두운 조명, 울퉁불퉁한 바닥, 낡아서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시장의 지붕과 1970, 1980년대에 만들어진 가게 간판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시간이 멈춰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시장의 규모도 크지 않아 점포 몇 개를 철거해 만들어진 공터를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도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이지만 이 작은 시장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여전히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민들의 수요가 변하면서 예전 그대로의 시장은 아니다. 정육점, 반찬가게, 건강원, 옷 수선집처럼 예전부터 있었던 가게들도 있지만 식탁 하나로 운영하는 식당, 발효식초로 만든 주류를 판매하는 펍, 독립출판물을 제작·판매하는 공방, 방향제 가게, 루프톱을 제공하는 커피숍, 유명연예인이 운영하는 서점 등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시장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수익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가게들이어서 다른 곳보다 임차료가 저렴한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은 임차료를 찾아 둥지를 튼, 다양한 가게들은 시장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 쇠락한 시장 안에 옛 모습의 가게들과 새로운 가게들이 공존하는 이 시장의 매력이 알려지면서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방문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깨진 지붕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신흥시장의 변화는 진행형이다. 해방촌 도시재생활성화구역에 포함돼 곧 변화의 바람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안전을 위해 시장 지붕을 교체하고 시설을 보강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시설투자에 대한 결과가 임차료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변화의 방향이 관광지화로 특정돼 시장 고유의 기능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장은 시장일 때 가장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흥시장의 고유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시설디자인의 도입 또한 절실한 과제이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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