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5만 원권 다발이 꼭꼭 숨겨져 있는 ‘어딘가’는 늘 호기심 대상이다. 그래서 검은 뭉칫돈이 수사기관에 적발돼 그 증거물이 언론에 공개되면 한동안 세인의 입방아에 오른다. 이번에 또 드러난 5만 원권 뭉치의 ‘은닉처’는 플라스틱 김치통이다. 전남 보성군에서 경리업무를 담당하던 김모(49) 씨는 최근 검찰에 ‘뇌물 7500만 원을 부모 집에 보관 중’이라고 자수했다. 검찰이 그의 진술대로 부모 집 뒤뜰을 파보니 플라스틱 김치통 등에 5만 원권으로 65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 1000만 원은 다락방에서 나왔다. 조사 결과 김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7월까지 총 20회에 걸쳐 관급 계약 브로커로부터 받은 뇌물 2억2500만 원 중 군수에게 건넨 1억5000만 원을 제외한 7500만 원을 땅속에 숨겨 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거액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5만 원권 ‘안식처’는 단연 금고다. 요즘도 자산가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지역은 금고업체 영업직원들의 집중 공략처다. 5만 원짜리 신권이 처음 발행된 2009년 이전만 해도 금고의 안방주인은 금괴(골드바)였다. 하지만 지금은 5만 원권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았다. 부자들은 유독 현금 더미 200개가 들어가는 150㎏짜리 금고를 좋아한다고 한다. 5만 원짜리로 채우면 딱 10억 원이 들어가는 크기다.
한데 ‘본좌’인 금고 자리를 넘보는 ‘복병’이 등장했단다. 바로 김치냉장고다. 강남구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지점장직을 맡고 있는 지인에 따르면 최근 2∼3년 새 금고 대신 김치냉장고를 애용하는 강남 현금 부자가 부쩍 많아졌다. 지폐 뭉치를 오래 묻어둬도 습기가 잘 차지 않기 때문에 십상이라는 게 그의 전언이다. 한때는 김장철이 아닌데도 강남권에 있는 한 유명 회사 대리점 김치냉장고가 동이 나 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5만 원권 행방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부터 4년간 1만 원권과 5000원권, 1000원권의 발행 규모는 제자리걸음이다. 5만 원권만 2013년 7조4000억 원, 2015년 12조8000억 원, 지난해 13조4000억 원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5만 원권 회수율은 49.9%로, 1만 원권 회수율(107.3%)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 ‘신사임당’을 김치냉장고 안에서 구해낼 묘책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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