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뒤 강원 평창군 평창읍 바위공원의 메밀밭. 이효석의 표현대로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꽃을 피운 메밀밭과 검푸른 하늘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
해가 저문 뒤 강원 평창군 평창읍 바위공원의 메밀밭. 이효석의 표현대로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꽃을 피운 메밀밭과 검푸른 하늘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

(97) 소설‘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고향… 강원도 봉평

가을이 되면 평창군 봉평면은 메밀꽃으로 새하얀 소금밭이 된다. 그 소금밭을 거닐다 보면 봉평 출신 소설가 이효석(李孝石·1907∼1942)과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년 10월호)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효석 문학관, 이효석 문학비, 효석·문학숲 공원, 이효석 생가, 가산공원 등이 작가와 관련된 것이라면, 복원된 물레방앗간이나 충줏집은 ‘메밀꽃 필 무렵’의 핵심적인 공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효석문화제와 메밀꽃축제가 열리는 가을의 봉평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고장 하나를 온통 문학작품의 현장으로 바꾸어버린 ‘메밀꽃 필 무렵’은 다음과 같은 문장만으로도 읽는 이를 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무리 반복해도 늘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 대목은 이효석 개인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한국근대소설사의 차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절창에 해당한다. 시각, 청각, 촉각의 자연스러운 융합과 세상 만물이 조응하는 상상력으로 인해, ‘메밀꽃 필 무렵’의 문장은 한국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심미의 구체를 증명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동반자 작가로서 도시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했을 때도, 혹은 심미주의자로서 이국(異國)의 모던한 거리를 배경으로 했을 때도 창조되지 않던 이러한 미문은 작가 자신의 고향인 봉평을 배경으로 했을 때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이효석은 1907년 봉평에서 태어나 1920년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여 년을 봉평과 그 인근에서 자랐다. 유년기가 한 인간의 고유한 정신의 뼈와 살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봉평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메밀꽃 필 무렵’의 빼어난 문장은 봉평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이효석에게 완전히 육화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처럼 또박또박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며, 소설에 묘사된 지형이 실제와 일치하는 소설도 드물다. 거기다가 허생원, 조선달, 충춧집, 성서방네 처녀 등이 모두 봉평에 살았던 실제 인물들(곰보영감, 조봉근, 조중원, 송씨, 성공여의 딸 옥분)을 모델로 했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주지하다시피 이 소설은 봉평장에서 출발하여 대화장까지 가는 한밤중의 여로가 작품의 기본 골격을 형성한다. 이 산골은 도시의 먼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절대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의 공간으로 봉평보다 적합한 곳도 없을 것이다. 평창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봉평은 모두 해발 1000m가 넘는 회령봉, 흥정산, 태기산 등의 봉우리가 성벽처럼 감싸고 있기에, ‘산문(散文)의 독기(毒氣)’나 ‘도시의 매연’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이다. 허생원은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봉평, 진부, 대화가 위치한 평창군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태어난 청주가 아니라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허생원에게는 ‘그리운 고향’이다.

허생원은 ‘얼금뱅이 상판’을 하고, 가족도 재산도 없이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닌다. 허생원은 왼손잡이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그의 결핍된 삶과 관련되어 있다. 나귀를 괴롭히는 장터의 아이들에게 채찍을 들자, 아이는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라며 반항한다. 이러한 허생원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고향 잃은 가난한 자의 우울한 초상으로 바라볼 여지가 충분하다. 허생원의 주변을 채우는 것도 그 잘난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조금은 모자란 것들이다. 허생원과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나귀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말에 비해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며, 메밀꽃도 심미주의자였던 이효석이 사랑했던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허생원의 모습은 소외와 결핍의 증표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의 기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긍정적인 정서와 의미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허생원이 자신의 이방인적 삶을 스스로 선택한 흔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허생원은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라고 말하면서도, 늘 봉평장에 들른다. 이처럼 허생원의 장돌뱅이 행위는 경제적 이윤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허생원도 젊은 시절에는 돈푼이나 모아본 적도 있지만,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호탕스럽게’나 ‘털어버렸다’라는 단어를 통해 물질에 대한 집착과는 거리가 먼 허생원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허생원은 돈에 절절매다가 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호탕스럽게 놀다가 가진 돈을 다 털어버린 사내인 것이다.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인근의 메밀꽃밭.  신창섭 기자 bluesky@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인근의 메밀꽃밭. 신창섭 기자 bluesky@

봉평장에서 대화장에 이르는 길을 채우는 것은 산, 내, 달빛, 메밀꽃뿐이며, 그 길 위를 나귀이자 인간이며, 인간이자 나귀인 존재들이 방울을 울리며 나란히 걸어간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허생원과 동이가 부자 관계라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만큼이나, ‘허생원=나귀’라는 등식을 드러내는 과정 역시 중요한 플롯으로 기능한다. 허생원과 나귀는 집요할 정도로 동일시된다. ‘까스러진 목뒤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리고 있다’고 표현될 정도로 외양부터 둘은 닮아있다. 늙은 허생원이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리듯이, 늙은 나귀도 김첨지의 암나귀를 보고서는 ‘저 혼자 발광’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생원이 아들 동이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귀도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단 한 번 장가를 가 새끼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 그윽한 산골을 채우는 산, 내, 달빛, 메밀꽃, 나귀, 허생원 등은 통칭하여 자연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산골에서는 인간도 하나의 자연에 지나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자연의 경지로까지 순화되고 정화된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인간 안의 자연은 다름 아닌 본능이고, 그것은 성욕으로 구체화된다. 처음 만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물레방앗간에서 함께 밤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자연으로서의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얼금뱅이 장돌뱅이와 마을에서 제일 가는 미색이 어떻게 처음 만나 어울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산문의 독기’로 가득한 세속에서나 가능한 우문이다. 물레방앗간의 허생원이나 성서방네 처녀는 모두 나귀이자 메밀꽃으로 숨 쉬고 있을 뿐이다.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한 후, 허생원이 빠지기도 하는 개천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한다. 이 개천은 물레방앗간이 놓여 있던 흥정천(興亭川)과 합류하여 평창강을 이루는 속사천(束沙川)이다.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하천의 상징적 의미에 어울리게, 개천을 건넌 후에 허생원은 나귀(자연)가 되어 산골을 돌아다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호젓한 밤길의 회상 속에서나 겨우 떠올리던 성서방네 처녀를 허생원은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테야’라고 말하던 허생원은, 이제 그토록 그리던 여인을 만나고자 고향인 ‘길’을 떠나려고 한다. 나아가 성서방네 처녀가 살고 있는 제천으로 가는 것은, 봉평장에서 동이와 충줏집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허생원(성의 경쟁자로서의 상상적 아버지)이, 아버지라는 이름이 모자라지 않은 진짜 아버지(상징적 아버지)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허생원은 자연의 상태에 머물던 봉평을 넘어 속세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허생원의 후일담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작품에는 그 후일담을 추측해볼 수 있는 스토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허생원보다 20여 년 먼저 속세로 건너간 성서방네 처녀(동이의 모친)의 인생담이다. 동이의 모친은 달도 차지 않은 동이를 낳은 후 쫓겨나고, 이후 재가하여 남편으로부터 온갖 폭력을 당하며 술장사로 동이를 키워냈다. 그토록 낭만적으로 미화된 물레방앗간의 기억은 어쩌면 남성인 허생원의 시각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메밀꽃 필 무렵’은 시종일관 허생원의 시각으로 모든 것이 관찰되고 발화되는 서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여성인 성서방네 처녀는 대상화될 뿐,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발화하지 못한다. 혹시 물레방앗간의 기억은 허생원에게는 평생을 버티게 하는 ‘추억’이었지만, 성서방네 처녀에게는 평생을 힘들게 만든 ‘악몽’은 아니었을까?

이효석이 ‘메밀꽃이 필 무렵’을 창작하던 무렵의 봉평은 높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산촌 중의 산촌으로서, 이효석이 자연을 근원으로 한 서정적인 세계를 구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봉평은 더 이상 인간마저도 자연으로 변모시키는 신화적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영동고속도로가 봉평을 가로지른 지는 이미 수십 년이 되어 가며,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 일도 포장된 도로를 차로 달리면 10여 분으로 충분하다. 거기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서 곧 KTX 평창역과 진부역이 완공될 예정이기도 하다.

21세기 봉평의 달라진 모습은 또 한 명의 강원도 평창 출신 작가 김도연이 쓴 ‘메밀꽃 질 무렵’(‘문장웹진’ 2006년 6월)에도 잘 나타나 있다. 허생원의 후예들은 이제 트럭이나 승합차로 짐을 나르고, 매일 집으로 퇴근했다가 다음 장이 서는 곳으로 출근한다. 이효석이 그려 보였던 천인합일의 세계는 꿈속에서만 가능하고, 현실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것은 술에 취해 잠이 든 허동이가 전대와 신발을 다 털리는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현실은 점점 각박해지며 따뜻한 옛날의 모습은 빠른 속도로 그 자취를 잃어간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 때문에 사람들은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을 더욱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자연에 대한 향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봉평의 메밀꽃과 달빛과 허생원과 나귀에 대한 그리움 역시 우리들 가슴속에서 언제나 방울 소리를 낼 것이다.

이경재 문학평론가·숭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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