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사진)은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가산(可山) 필명으로 아세아(亞細兒), 효석(曉晳), 문성(文星) 등을 사용하였다. 1920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5년에는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하였다. 1927년에 경성제대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하였으며, 1928년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조선지광’에 발표하며 동반자작가로 주목받았다.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1932년 함북 경성농업학교에 영어교사로 취직하였다. 1933년에 구인회 창립에 관여하기도 하였으며, 1936년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여 평양으로 이사한다. 1938년 숭실전문학교 폐교에 따라 교수직을 퇴임하고, 1939년 대동공업전문학교의 교수로 취임한다. 1940년 부인과 차남을 잃고, 만주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이효석은 등단 직후인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는 도시를 배경으로 빈부 갈등과 사회적 모순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지만, 그의 문학적 본질은 심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심미주의는 예술지상주의적 성격, 생활에서의 탐미, 데카당스 풍조로 구체화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지향으로 나타나고는 하였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토속적인 향토나 ‘화분’이나 ‘벽공무한’에 등장하는 세련된 구라파 모두 아름다움의 성채라는 점에서, 이효석에게는 모두 동질적인 대상이다. 이효석의 심미주의 문학은 한국문학사의 매우 이채로운 봉우리라고 할 수 있다.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