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지도자, 제왕적 지도자에 대한 신화가 깨지고 설득하고 협력하는 지도자가 민주적 지도자로 조명받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협력적 리더십의 소유자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강한 지도자, 제왕적 지도자에 대한 신화가 깨지고 설득하고 협력하는 지도자가 민주적 지도자로 조명받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협력적 리더십의 소유자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강한 리더라는 신화 아치 브라운 지음, 홍지영 옮김/사계절

“나는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해야 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이란 이게 전부다.”

해리 트루먼이 말한다. 응, 누구라고? 한때 미국 대통령이었던 사람. 우리는 그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강한 리더라는 신화’에서 옥스퍼드대 정치학과 명예교수인 아치 브라운은 국가 최고 지도자의 일을 ‘설득’으로 만들어 버린 이 유약해 보이는 사람을, 현대 정치가 요구하는 이상적 리더십의 한 전형으로 끌어올린다.

트루먼의 업적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본래 트루먼 플랜이라고 불려야 할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을 부흥시켰고, 애치슨 방어선의 잘못을 한국전쟁에 대한 신속한 개입으로 극복했다. 권력의 힘을 이용해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강한 지도자’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동료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후, 대통령의 지위에 바탕을 둔 지속적 설득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지도부 전체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협력적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강한 지도자는 정말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강한 지도자가 곧 위대한 지도자’라는 믿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명멸했던 전 세계 정치 지도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바탕에 두고 아치 브라운은 이러한 믿음이 낡아빠진 신념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낸다.

‘강한 리더십’은 한 개인이 권력 전체를 장악해 휘두르는 것, 즉 한 사람이 정부와 정당을 지배함으로써 권력이 반대 없이 일사불란하게 행사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의 이러한 작동방식이 문제 해결에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가 면밀히 여러 사례를 살펴본 결과, ‘제왕적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스스로 골칫거리가 되거나 끔찍한 사회적 재난을 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대통령 자리와 거기 딸려오는 강자의 연단을 즐겼다.”

강한 지도자의 대명사로, 불후의 영웅을 연기하고 싶어 했던 로널드 레이건의 말이다. 그는 작은 정부, 적은 세금, 균형재정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붕괴라는 행운의 과실이 없었더라면, 그는 별 볼 일 없는 실패자였다. 저자에 따르면, ‘강한 리더십’을 내세울 뿐 그가 이룬 일은 거의 없다. 국민소득 소득세 비율은 전혀 바뀌지 않았으며, 세금 인하 혜택은 주로 부유층이 독점했다. 재임 중 정부직원 숫자는 더 늘어났고, 연방예산 적자 역시 꾸준히 커졌을 뿐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 감각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힘만이 레이건 리더십의 실체였다.

오래된 문화적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제왕적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강한 지도자에 대한 원시적 신화에서 벗어나 민주정치의 발전에 걸맞은 ‘좋은 지도자’를 바라야 한다고 호소한다. 저자의 종횡무진은 놀랍다. 이 책은 끝없이 쏟아지는 자료와 상세한 조사 결과를 통해 20세기 정치사의 이면을 읽는 기쁨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얻어야 할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실체에 접근하도록 돕는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정말 바라야 할 지도자는 ‘강한 지도자’보다는 ‘좋은 지도자’다. 민주정치 국가에서 좋은 지도자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 후, 이를 이루려고 함께 노력하는 협력의 리더십을 갖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잘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정부나 의회 등 지도부를 이루는 이들과 서로 협력하고, 주요 권한을 기꺼이 위임하며, 해결책을 협상할 줄 알아야 한다. 현대 민주정치에서는 이러한 협력적 리더십을 갖추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롭고 유능한 정치체제를 이룩할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재정의형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에 주목한다. ‘재정의형 리더십’은 뉴딜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민권법’을 도입한 린든 존슨, ‘우향우 정책’의 마거릿 대처 등 필요한 시기에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즉 정치의 본질을 다시 정의함으로써, 급진적 정책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십을 말한다.

‘변혁적 리더십’은 ‘한 나라의 정치 또는 경제 체제의 구조 변화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리더십’이다. 위기에 처한 기존 체제를 완전히 혁신해서 미래를 마련한 에이브러햄 링컨, 넬슨 만델라, 아돌포 수아레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샤를 드골, 덩샤오핑(鄧小平)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저자의 핵심적 주장은, 민주정치가 집단지도 체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민주정치가 심화할수록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것보다 정치를 책임지는 정당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리더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지도자를 둘러싼 집단적 시스템이 얼마나 바람직하게 작동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정치지도자가 설득의 힘을 잃고 법치를 벗어나려는 유혹을 받을 때마다, 국회와 국민에 대해 민주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지난 겨울 내내, 우리는 ‘잘못된 제왕적 리더십’의 폐해를 극복하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대가를 치렀다. 따라서 우리는 떳떳하게 묻고 선명하게 답할 수 있다. “막대한 권력을 쥔 강한 지도자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 정치 체제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황제가 아니라 협력적 리더십을 갖춘 탁월한 조정자다. 600쪽, 3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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