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나 금속활자를 통한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사경은 불경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하며 수행용으로 사경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경하시는 분 중에는 ‘한 자 쓰고, 한 번 절하고’하는 일자일배(一字一拜)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창덕궁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한국문화정품관갤러리(02-747-5634)에서 ‘금사경(金寫經) 특별전’을 열고 있는 현담 허락 작가는 ‘사경 작업’의 의미부터 설명했다. 사경은 필사경(筆寫經)의 준말로 불경을 원본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리는 작업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금사경은 금니(金泥·금가루를 아교풀 등과 함께 섞은 것)를 물감으로 해 세필을 잡고 쪽물 들인 한지인 감지(紺紙)에 불경을 필사하는 것이다.
금사경 분야는 고려시대에 특히 발달했으며 당시에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사신을 보내 배워가거나 제작을 의뢰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그 기법 대부분이 소실됐고 현재는 금사경 제작기법에 대한 문헌이나 계승자도 거의 단절된 상태다.
11월 8일까지 계속될 전시에는 ‘묘법연화경’ 14곡 병풍, ‘금강반야바라밀경’ 8곡 병풍, ‘지장보살본원경’ 10곡 병풍 및 절첩본(折帖本·제본된 책)과 같은 대작을 비롯해 ‘반야바라밀다심경’ ‘신심명’ 소품 등 다양한 모습의 사경 작품들이 공개돼 있다. 작품마다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가 달라 사경 작품의 다양한 매력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또 감지 위에 금니로 빼곡히 쓰여 있는 글자도 일품이지만 역시 허 작가가 금니를 이용해 세필로 그린 변상도(變相圖·부처의 일생, 불교의 설화 등을 그린 그림) 또한 작품성이 뛰어나다. 그 때문인지 장중함과 엄숙함 속에 전시장에는 황금빛 여운 같은 것이 은은히 흐른다.
작가는 매일 1900여 자를 사경해 지금까지 ‘화엄경’ 절첩본 81권 2번 사성(寫成·사경 작업의 완성), ‘법화경’ 7권 7번 사성 등 30여 년째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무려 200만 자 넘게 불경을 옮겨 적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최우수상,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했으며, 2011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와 2011 대장경천년세계축제에 초대 출품하기도 했다.
“경전을 읽는 것과 사경하는 것이 다 일장일단이 있겠죠. 물론 사경이 시간은 많이 걸립니다. 법화경의 경우 5㎜ 크기의 글자 7만 자와 변상도 7점을 그리는데 꼬박 7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나무에 글자를 새기듯이 정성들여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환희심에 의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때가 많아요. 종종 등줄기에서 뜨거운 기운도 올라오기 때문에 피로도 못 느낍니다.”
허락 작가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70년대 초반 한국해양대 기관학과를 졸업했고 엔지니어 생활을 했다. 작가는 1980년대 중반 우연한 기회에 통도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757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제46권의 금자장경(金字藏經·아교풀에 금박을 풀어쓴 불경)을 본 후 전율을 느끼고 1988년부터 사경 작업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렸지만 제작 기법 등 딱히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없는 사경 작업은 고된 일이었다. 계속해서 통도사를 찾아 화엄경을 보고 또 봤다. 그리고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금가루는 종이에 두툼하게 묻어야 발색이 되며, 시간이 지나면 접착제 효과가 낮아져 가루가 되어 떨어지기 쉽다. 작가는 오랜 실험과 연구 끝에 급기야 금가루와 접착제 비율을 비롯한 제작기법을 터득했다. 8년의 세월이 걸렸다.
허 작가는 화엄경을 절첩본이 아닌 12틀의 병풍 총 162폭에 변상도 81점과 함께 60만 자를 사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금도 모금 중이다. 병풍을 연결하면 무려 100m이며 병풍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삶의 희망과 불법을 나누는 기도도량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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