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권 해외사업부 대리
풍습에 학업 포기한 케냐 소녀
어린이들의 인식 개선 필요해
- 김보경 마케팅팀 사원
회계사 꿈꾸던 2년 공부 접고
印尼 자원봉사서 내 길 찾아
- 채희옥 복지사업본부 대리
복지 관심없던 케이블방송 직원
방치된 아동들 환경 보고 결심
- 손주영 아동복지연구소 대리
아이들 시선으로 아동정책 수립
어른들 시각만으로 해선 안돼
집 안에 발을 들이자 곰팡내가 진동했다. 방안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 사는 곳 맞나?”
그곳에 두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혼자 울고 있었다. 당시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던 김일권(31) 대리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좋은 직장에 취직해 좋은 보수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이의 철없는 젊은 부모는 게임에 빠져 아이를 홀로 남겨두고 PC방에 갔다고 했다. ‘꿈’이 바뀌었다.
취업 잘되는 학과를 골라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보경(여·27) 씨. 회계사가 돼야 한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2년간 시험준비를 했다. 결국 꿈을 못 찾고 인도네시아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피폐해진 마음을 다잡아 보자는 생각이 컸다. 그곳에서 꿈과 재능이 많은 아이가 어려운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켜봤다. 드디어 자신의 꿈을 찾았다.
김일권 대리와 김보경 씨는 지금 글로벌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 해외사업부와 마케팅팀에서 각각 일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국가의 미래인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기관이다. 70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지원 패러다임도 진화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영역 확대다. 단순히 불쌍한 어린이를 돕는 구호 차원을 넘어 교육 사업·개발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작은 1948년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CCF) 지원으로 설립된 한국지부다. 당시 전쟁고아 등 아동 지원 사업을 했다. 지금은 전 세계 1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아동기구인 어린이재단연맹(ChildFund Alliance) 회원재단으로 세계 58개국 아동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재단에 들어온 사람들은 일반 직장인과는 좀 다르다.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에 대한 ‘사회복지와 교육, 봉사’라는 신념을 좇아 ‘좋은 보수와 대우’를 기꺼이 포기한 이들이다.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를 돌보는 이들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역군들인 셈이다.
재단 복지사업본부에서 일하는 채희옥(여·36) 대리도 애초 사회복지에 별 관심이 없던 평범한 지역 케이블 방송사 직원이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어 불우이웃에게 전달해 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어요. 광주의 한 가정을 직접 방문했을 때 형제 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지방근무 중이고, 어머니는 항암치료 중이라 방치되고 있었어요. 악취가 진동했고요. 이런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도시락 하나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진로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재단에 오게 됐죠.”
이들의 ‘희망’은 모두 하나로 수렴된다.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위한 사회’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는 재단의 모토와 정확히 일치한다.
재단 아동복지연구소에서 일하는 손주영(여·33) 대리는 “아동 정책 수립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어른들만의 시각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손 대리는 지금 ‘아동 통학로에서의 흡연 문제’ 해결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1만 명을 대상으로 어린이 정책 공약을 조사했는데, 1위가 ‘흡연 고통 해결’이었다. “실태조사를 위해 200여 곳을 찾아가 봤는데, 4곳을 빼고는 전부 통학로에서 흡연이 만연해 있었어요. 마스크를 하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교에서는 정화시간에 아이들에게 학교 주변 담배꽁초를 줍게 합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어린이 정책이 바뀌기도 했다. 2015년 안전관리법 시행으로 전국 1700여 개 놀이터가 개선조치 전까지 일제히 사용이 금지되면서 생겼던 혼란을 해결한 게 대표적 사례다. 각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이 비용을 들여 개선해야 하는데 영세한 아파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재단의 노력으로 주민, 지역기업의 모금이 진행됐다. 채희옥 대리는 “당시 지자체도 아이들에게서 놀이터를 뺏지 말아야 한다는 조례까지 제정했다”며 “우리 노력으로 정책이 바뀌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보경 씨는 “불우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뭘 갖고 싶냐고 물어보면 장난감이 아니라 ‘할머니를 위한 재봉틀’ ‘엄마 틀니’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몸이 아파 병실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가족여행을 갈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고, 거동이 힘든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아이에게 자전거를 선물했는데 펄쩍 뛰며 좋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일권 대리는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재단에서 하는 ‘해외아동 We Can 캠페인’ 콘텐츠 개발을 위해 케냐 카지아도 지역을 찾았을 때 만났던 소녀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할례와 조혼 풍습 때문에 학업을 중단한 소녀가 가족을 설득해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이는 학업을 중단한 주변 친구들도 설득해 다시 하게 만들었다며 후원 덕분에 이런 노력이 점차 성과를 얻어 가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표했어요. 아이들의 인식을 개선해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이제훈 회장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아동행복지수가 최하위로, 아동들이 살아가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국가”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어른들이 어린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재단에서는 아동 애드버커시(권리 옹호) 활동을 통해 법률 개정 등을 끌어내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이들이 좋은 심성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인성교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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