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시장은 설 자리 잃어
내년 예산 복지지출 폭발적
올해 총지출 증가율 6.1%
美 3.7% - 日 0.8%와 큰 差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땐
‘30년간 419兆’ 국민이 부담
‘장밋빛 전망’ 정부 “괜찮다”
20년 전 외환위기, 10년 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등 세계 경제 위기에서 한국 경제는 매번 크게 휘둘린 바 있다. 10년 주기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그때마다 미봉책으로 장기적인 시간이 요구되는 구조적인 현실 문제를 덮었기 때문이다. 내년 각국의 금리 인상 등 긴축경제의 여파로 세계 경제 위기 도래설에 국내 산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는 끝없이 추락했다. 환란 당시인 1997년에도 5.9%였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8%로 절반 아래까지 떨어졌다. 반면 청년실업률은 20년 만에 5.8%에서 9.8%로 2배 가까이로 치솟았다. 지난 20년간 진보와 보수가 10년씩 집권하며 진단과 해결책을 내놨지만, 단기 처방에만 급급하다 보니 어느 쪽도 한국 경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산업계와 가계부문도 지난 20년간 악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1996년 80.4%에서 지난해 72.6%까지 떨어졌다. 한계기업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15%까지 치솟았다. 가계부채는 10년 전보다 2배가량 증가한 1400조 원에 이른다. 가계부채에 짓눌린 민간 소비증가율이 2%대 초반으로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 핵심 전략을 드러낸 2018년 예산안은 한마디로 ‘오늘’을 위해 ‘미래’를 희생했다는 지적이다. ‘복지’와 ‘큰 정부’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성장’과 ‘시장’이 도외시됐다는 것이다. 경제계의 두 축인 자본을 무시한 노동만 중시한 것이다.
노동정책 전략에도 생산성 향상 비전은 없고, 이중구조의 병폐 역시 해결책은 없다. 이에 따라 성장과 구조조정 없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복지가 앞으로 국가 재정 운용의 유연성을 훼손시킬 것이라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내년 예산안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복지 관련 지출을 가장 많이 늘린 예산’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내년 예산의 보건·복지·노동 예산 증가율(12.9%)과 증가 폭(16조7000억 원)은 모두 사상 최고치다.
내년 일자리 예산이 올해 대비 12.4%(2조1000억 원) 늘었고, 청년층(15∼29세) 일자리 예산이 올해 대비 20.9%(5000억 원) 증가했다. 금액으로 보면 크지 않다. 일자리 예산은 보건·복지·노동(146조2000억 원) 예산 중에서 극히 일부다. 하지만 공무원 신규 채용 등에 투입되는 예산은 중·장기적으로 재정이 크게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공무원 17만4000명을 증원하면 한 명당 연간 8000만 원씩, 30년간 총 419조 원의 인건비(세전 연봉+부대비용)를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고 납세자연맹은 추산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산한 국민 부담 수준보다 100조 원가량 불어났지만, 정부는 비용 추산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무원을 추가 채용하기 전에 국민이 부담하는 비용부터 정확히 추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복지에 치중하다 보니 성장동력 확충은 뒤로 밀렸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 대비 1000억 원 늘어난 19조6000억 원에 그쳤다.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예산은 올해보다 1000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전문가들은 “복지지출 확대가 무서운 이유는 한 번 주면 다시 뺏을 수 없다는 속성 때문”이라며 “어떤 복지 제도든 한 번 도입된 뒤에는 없애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저항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복지지출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우리나라의 총지출도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지출 증가율은 2017년 기준으로 6.1%(추가경정예산 기준)다. 미국(3.7%), 일본(0.8%), 독일(1.8%)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높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편성된 내년 예산의 총지출 증가율은 추경을 편성하지 않았는데도 7.1%에 달한다.
내년에도 추경을 편성하면 총지출 증가율이 10%에 육박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우리나라는 재정이 건전하므로 당분간 복지를 확대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2012∼2016년 사이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8.2%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OECD 회원국 대부분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한국의 무분별한 복지 확대에 지금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인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 5년보다 문재인 정부가 끝난 뒤의 복지지출 증가가 더 걱정”이라며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이 너무 ‘장밋빛’”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철 기자 mindo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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