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달중(왼쪽) 서울대 명예교수와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가 문화일보 창간 26주년 기념 ‘미래를 이야기하자’ 특별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두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과거와의 투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대 진영과 대화하고 국민 전체를 포용해 궁극에는 국민 통합의 미래를 일궈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달중(왼쪽) 서울대 명예교수와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가 문화일보 창간 26주년 기념 ‘미래를 이야기하자’ 특별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두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과거와의 투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대 진영과 대화하고 국민 전체를 포용해 궁극에는 국민 통합의 미래를 일궈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靑에 상전들 많아… 시장간섭 줄이고 민간 창의성 극대화”

[참석자]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
진행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적폐청산을 기치로 시작된 전(前) 정권 및 전전(前前) 정권 비리 파헤치기가 반년가량 이어져 오면서 정치·사회적 대립과 분열,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정권이 과거와의 전쟁에 매진하는 와중에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미래의 실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제정치가 격랑치고 글로벌 경제지도가 변화의 급류를 타는 엄중한 때에 대한민국만 잿빛 과거에 머물 수 없다는 절박함, 이젠 밝고 힘찬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각성이 싹트고 있다. 이에 문화일보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와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를 초청해 ‘미래를 이야기하자’를 주제로 대담 기획을 마련했다. 장 교수는 “정치권과 국민 모두는 대한민국의 주체가 ‘복수(複數)’라는 걸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고, 박 교수는 “적폐청산은 사회 전반의 퇴행적 관행, 국가의 간섭을 정당화하는 제도와 문화를 바로잡는 구조개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학자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여당이 촛불시민을 넘어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반대 진영을 인정하고 대화하고 협치함으로써 국민 통합을 일궈내는 게 미래를 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대담은 지난 10월 23일 오후 문화일보 본사에서 허민 선임기자의 사회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허민 선임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돼 간다. 새 정부의 국정 운영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나.

△장달중 교수 = 문재인 정부의 등장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하면,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제일 중요한 게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좀 생각을 전환해야겠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들도 시스템이나 관행 이런 걸 다 바꾸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모두 용두사미로 끝났다. 우리나라 정부는 각자 굉장히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타이밍에 들어섰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모두 사회 전환기에 매듭을 풀고 새로운 길로 나갈 수 있는 시기에 등장한 정권이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제일 중요한 건 미래 청사진인데, 결과적으로는 과거 청산에만 앞장섰다.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새로운 가치체계가 있어야 하고, 주도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 사회의 리더 즉 모범적인 상(像)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 그런 게 없다.

△허 선임 = 이번 정부는 시민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라는 가치체계를 강조하지 않나. 또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주도세력으로 광장민주주의 세력을 생각하고, 모범적인 상으로 촛불시민을 제시하는 것 아닐까.

△장 교수 = 문 정부는 확실히 전통적인 세력을 대체하는 새 주도세력이나 모범적인 상으로 촛불세력을 상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안 된다. 나라를 운영하는데 촛불을 든 시민만 갖고 되겠나. (촛불)시민만 있다면 전체 국민은 어디로 가는 거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 꼭 ‘스타워즈’를 보는 거 같다. “정의의 이름으로 복수하겠다” 이런 식 아닌가. 미래를 설계해야 하고 그 청사진이 확실히 나타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 과거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체계적으로 나오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대증요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 주도세력을 누구로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상당히 혼란스럽다.

△박재완 교수 = 새 정부 출범 배경을 보면 최순실 사태가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소통을 하자, 통합을 이루자, 좀 협치를 해나가자, 분권형 대통령제로 옮아가자, 단임제는 문제 있는 거 아니냐 그런 문제의식이 거기서 싹튼 것이다. 그게 대선 과정에서도 공감대를 이룬 거였고. 그런데 새 정부 출범 6개월이 돼 가는데 그런 공감대를 실현한 게 별로 없다. 이건 완전히 치매 상태다. 나라 전체가 다 잊어버렸다. 여야는 강 대 강 국면이고 협치는 잘 안 되고. 분권과 분산, 이런 것도 구현이 안 되고 있어 정말 아쉽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허 선임 = 청와대와 정부가 국정의 동력을 과거와의 전쟁에 쏟아부으면서 미래로 가는 쪽은 소홀히 하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 정부가 그런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걸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 부르고 싶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박 교수 = 지난 1월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응답과 책임의 리더십(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었다. 새 정부는 응답 쪽에서는 점수를 받을지 모르나 책임 쪽에서 보면 꼭 그렇지 않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중단시켜 놓고 보는 게 무책임의 좋은 예다. 다행히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결과 재개로 결정되긴 했지만 시민 참여로 모든 정책을 다 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의 숙의가 보강돼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발전 단계를 보면 정부가 주도하는 모습이 쭉 이어져 오고 여전히 정부의 입김이 사회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성숙한 고도 경제 발전 단계에 돌입하게 되면 민간 쪽의 자율과 창의가 적극 발현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시장의 역할을 좀 더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정비돼야 할 거 같은데 새 정부 들어 뒷걸음질 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올릴 수는 있지만 영세업자 등에 대해 정부가 재정을 풀어서 부담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간의 창의나 시장의 자율성과는 동떨어진 거다. 또 절차 민주주의랄까 그런 점에서는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실체 민주주의 차원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 정당의 행태나 표방하는 정책을 보면 이게 과연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정당의 것인지 당리당략에 매몰된 것인지 그런 회의도 든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고 나면 좀 괜찮아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실망스럽다. 결과적으로 후한 점수를 드릴 수 없다.

△허 선임 = 적폐청산 말이 나와 여쭙겠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토론하는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정부가 유난히 과거와의 전쟁이랄까, 적폐청산에 열심인 이유가 뭘까.

△장 교수 = 적폐청산을 마냥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적 지지도 상당히 있어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도 높은 지지율로 나타난다. 보면 볼수록 전 정권의 부조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 각 부처, 특히 국가기관의 적폐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것을 정리하는 작업은 필요해 보이고 지지도 받는 거 같다. 정권 차원에서는 다른 무엇으로 환심을 살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 정부가 처한 상황이 진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보수세력과 혁신세력이 밀고 당기는 ‘보혁 길항(拮抗)’의 상황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뭘 어느 한쪽으로만, 한 가지로만 밀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협치를 해야 하는데 적폐청산을 하니 국정과제 추진이 어려워지는 거다. 과거지향적인 적폐청산이 미래로 가는 길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본다.

△허 선임 = 과거지향적인 적폐청산이 문제라면 미래지향적인 적폐청산도 있나.

△장 교수 = 현재는 곧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어야 한다. 그런데 적폐청산 구호와 행태가 과거에만 올인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 미래가 안 보인다. 이를 극복하는 게 이 정부의 과제인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정치엔 프로(페셔널)와 아마(추어)가 다 필요하다. 아마라는 건 직업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사회 각계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하는 거를 견제하는 것을 임무로 아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옛날엔 말하자면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그런 걸 좀 해주지 않았나. 정치가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가지 않도록 정치권에 충고도 하고 조언도 하는 아마 세력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없다. 원래는 시민사회나 촛불시민이 아마 세력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촛불세력이 집권세력이 돼 버린 상태다. 이 정부가 내거는 게 시민정치다. 하지만 촛불시민보다 더 큰 국민이 있다. 정부 시각이 시민에만 매몰되면 문제가 생긴다. 과거와의 투쟁에 집착하고 나라 전체의 미래상을 그리는 데 소홀하지 않나 하는 거다. 이런 게 과거지향적인 적폐청산이다. 거기에 묻히면 헤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적폐청산을 해나가되 이 동력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이 정부에선 그런 전략도, 전략가도 보이질 않는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같이 난국을 헤쳐 나갈 전략가가 있어야 하는데.

△박 교수 = 적폐청산은 어찌 보면 당연한 명제이기도 하고 필수불가결한 작업일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하나 잊고 있다. 과거 정권의 적폐만 적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광범위한 적폐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교통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너무나 당연시하고 만연해 있는 여러 문제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지난 두 차례의 보수정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번 보자. 노조의 적폐도 있고, 사회 전반의 퇴행적 관행도 있다. 시장과 민간의 자율을 침해하는 국가의 간섭도 적폐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적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적당히 넘어가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 않나. 참 걱정이다.

△허 선임 = 적폐의 대상이 과거 정권을 넘어 사회 전반의 퇴행적 관행과 전근대적 질서와 문화를 포괄해야 한다는 뜻인가.

△박 교수 = 특정 정치집단만 겨냥하면 국민 모두의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정부가 벌이는 적폐청산의 콘텐츠가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계층과 집단에서 공감대를 이룰 수 있겠나 하는 의문이 있다. 정치적인 편향성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에 순기능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을 놓고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나는 진정한 적폐청산은 구조개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인이나 정부기관의 일탈도 단죄해야겠지만.

△장 교수 = 좋은 말씀이다. 지금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다. 여론조사를 보면 불가사의하게 높게 유지된다. 대통령에게 인간적인 매력도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정치 관행, 사회 관행을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품격에 걸맞은. 적폐청산도 그렇고. 그게 말하자면 정치·사회적인 성숙도인데,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룰’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의회가 얘기하면 다 통하고, 미국은 법이 하면 다 따라간다. 우리나라는 뭐가 정치·사회를 지배하느냐 하는 거다. 정치·사회 전반을 거번(govern)할 수 있는 룰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지금 보면 그냥 ‘때려잡자’ 이런 식이다. ‘때려잡기’가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룰이 돼 버렸다. 옛날에는 진보와 보수가 싸워도 국가의 대사(大事)를 함께 걱정했는데 지금은 딱 갈라져 있다. 이런 걸 극복할 수 있는 ‘거버닝(governing) 룰’을 정착시켜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그런 룰, 그런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할 임무가 있다.

△허 선임 = 뭐가 룰이 돼야 하느냐를 화두로 꺼내셨다.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룰이 있어야 국민의 순응도 부를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둘러싼 공론화위원회 논의 이후 ‘공론화’가 마치 정치·사회의 룰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그건 거꾸로 대의제의 위기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숙의민주주의라 얘기하지만 숙의의 모범은 의회다. 즉 숙의민주주의는 대의제를 통해 구현되는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룰은 역시 국회가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박 교수 = ‘때려잡기’가 하나의 룰로 돼 버린 데 대한 우려에 공감한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때려잡기가 진행돼 왔고, 그게 묵인된 룰이 됐다. 그런데 적폐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적폐가 편 가르기, 즉 분열이다. 내가 협치를 강조하는 건 국민 통합이란 쪽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독일은 최근 총선에서 보듯 제도적으로 어느 한 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늘 연정(聯政)을 하게 한다. 그것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쓰라린 대가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제하에서 매번 굴곡을 거치면서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하고 소모적인 정쟁을 하고 있다. 그런 편 가르기와 분열, 정쟁의 책임은 아무래도 집권세력에 더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적폐청산에 매진하는 게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거다. 어떤 개인이나 정치세력의 일탈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은 공포를 느끼고 불만을 갖는다. 이게 현 정부가 대한민국이 미래로 발돋움하는 데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적폐청산을 전체 구조와 문화·시스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개혁할 것인가 하는 쪽으로, 즉 구조조정의 관점으로 초점을 옮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허 선임 = 장 교수는 때려잡기에서 벗어나 미래를 만들어내는 정치·사회의 룰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박 교수는 편 가르기와 분열을 극복하는 통합의 룰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박 교수 = 그 두 가지는 필연적으로 정치권의 협치를 요구한다는 지점에서 만난다고 본다. 분열과 정쟁을 극복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시스템과 제도, 관행을 고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벌인다면 더 큰 개혁적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장 교수 = 정치인들은 주체가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 즉 복수라는 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주체가 여럿이라는 것은 그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걸 인정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경우처럼 정치적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주체가 복수인 걸 알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정부가 지금 가장 각성해야 할 포인트는 주체가 복수임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협치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많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 선임 =‘무효화의 정치’ ‘Politics of Undo’라는 말이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 정권이 성과를 내야 하고 그러려면 전임 정권 때의 모든 성과를 지워야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진보정권은 특히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전임 정권 때의 국정을 적폐로 몰아가면서 청산작업을 한다. 하지만 정권이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에 빠지면 종종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다. “내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 너희는 나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앞세워 정치를 하면 협치는 없을 테니까.

△박 교수 = 그렇다. 그런 식으로 하면 뺄셈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적폐세력하고 함께하지 못한다는 거니까 분열되고 편이 갈라진다. 그게 미래로 가는 길을 잡게 되는 거고.

△장 교수 = 우리나라 정치는 남의 결점만 보고 자기 결점은 안 보는 저주에 걸린 듯하다. 남 탓만 함으로써 통합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행태가 벌어진다.

△허 선임 = 분야별로 좀 더 이야기해 보자. 먼저 장 교수가 정치·외교 분야를 짚어 달라.

△장 교수 = 뭐니 뭐니 해도 북핵 문제가 시발점이 된 안보 불안이 가장 크다.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힘든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유독 북핵 위기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해 국민이 볼 때는 상당히 불안하고 이견도 있는 거 같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비핵화 노선을 이끌어 낼 정책을 펴야 하는데, 걱정스러운 건 우리가 ‘패싱’당하는 일이다. 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위한 연대 속에서 정작 대한민국이 소외될 위험이 있어 그것도 국민이 보기에는 걱정이다. 나아가 지금 정부가 과연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평화 노선을 북한으로부터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깊다. 정부가 최근에 툭 하면 내던지는 대북 정책들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이나 큰 틀에서 조율된 ‘시퀀스’(연속 행위)로 제시돼야 안정감을 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허 선임 = 북한 정권과의 대화를 얘기하면 할수록 대화가 멀어지고, 북한과의 평화를 얘기하면 할수록 위기가 고양되는 한반도 질서가 참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다. 이번에는 박 교수가 경제·사회 분야를 말씀해 달라.

△박 교수 = 지금 우리 사회는 개혁과제가 정말 많다. 교육, 노동, 금융, 기업문화, 복지, 탈규제 등 전방위로 개혁돼야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게 뭐냐, 바로 민간과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거다. 이를 통상 규제개혁이라고 하고, 작은 정부라고도 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민간에 대한 간섭을 방치하는 건 큰 적폐다. 그렇게 되면 민간부문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없다. 산업화 시대에 도입된 시스템도 확 고쳐야 한다. 정부가 낡은 시스템과 규제를 폐지하면 시장은 새로운 걸 만든다. 고용문제도 크다. ‘공장법 시대’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건 진보정권에도 유용하다. 우리 노동 관련 법제가 대기업노조·남성·정규직은 이익을 보고 비노조·여성·비정규직은 차별받는 식으로 돼 있어 이중구조를 심화시킨다. 노동을 할수록 시장이 양극화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건 진보의 의제에 반하는 것 아닌가. 결국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타협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노조가 지금 정부의 우호세력이어서 그들의 이익에 반해 제도를 바꿀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나 성과연봉제 폐지 같은 이 정부의 많은 정책 방향이 다시 과거 공장법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이것도 적폐다.

△허 선임 = 박 교수가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을 넘어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돼야 진정한 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갖는가.

△박 교수 = 소득주도성장론의 원래 취지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면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고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소득을 어떻게 늘려주느냐의 문제가 있다. 국가 재정에서 가져다 쓰고 세금을 퍼서 공공부문 일자리만 만들어 내고,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남으로써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게 정공법이다. 이 정부에서 제시된 해법들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정공법이 될 수 없다.

△허 선임 = 원래 경제학에는 소득주도성장론이란 게 없는 것으로 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임금주도(wage-led)성장론이란 게 있었는데 이 정부가 이를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바꿨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든 이것이 경제성장의 미래를 담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정리해 주셨다. 청와대 내에 너무 많은 ‘경제 상전’들이 있는 게 문제라는 말도 들린다.

△박 교수 = 허 선임이 쓴 칼럼을 읽고 공감했다. 외교나 안보, 이런 건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옳다. 하지만 경제나 민생, 이런 건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부 내 최고 전문가는 경제부총리다. 거기에 맡기면 된다. 청와대에 너무 많은 ‘액터(actor)’들이 중층적으로 교직돼 개입하고 관여하니까 관료들이 자꾸 눈치만 본다.

△장 교수 = 청와대에 상전들이 많아서 도대체 누구한테 전화해야 하느냐는 말들이 시중에 있다고 한다. 그런 게 경제에 대한 회의론을 부추긴다. 오래전 슘페터가 지적했듯 자본주의는 내부 지식인의 반자본주의적 정서 때문에 위기에 봉착한다. 이런 운명을 등에 업은 게 이 정부다. 단편적인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거, 이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왜 연임하느냐를 보면, 기다릴 줄 안다는 데에 답이 있다. 기다리면서 입장을 바꿔 가며 (정치적 파트너들과) 조율한다. 우리는 단칼에 뭘 다 베려고 하는데 그럼 안 된다. 단칼로 다 베어질 정도로 간단한 사회도 아니고.

△허 선임 = 결국 다시 협치가 중요해진다는 느낌이다.

△장 교수 = 문 대통령이 먼저 각 영역에서 주체의 복합성을 인정하고 각 주체와 타협을 모색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딱 정해진 것만 보고 ‘일도양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여론이 그걸 지지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지만, 사실은 국정 운영 지지도가 높을 때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고 협치를 추진해야 한다. 힘이 빠지면 협치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박 교수 = 나 이외의 존재를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아닌가. 다원성을 받아들이는 게 민주주의의 원리이고 그래야 협치가 이뤄진다.

△장 교수 = 그래야 정치적 일방성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정치 아마추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허 선임 = 국정 운영의 70~80%는 국회를 통해 이뤄진다. 지금은 협치를 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야당의 지지를 받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편 가르기 식으로 싸우고 정쟁에 매몰되면 여권은 야권의 도움을 얻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 의석) 120석을 갖고 뭘 할 수 있겠나.

△장 교수 = 그런 면에서 원내 전략이 정말 중요하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여당 원내 지도부에 그런 정치력이 안 보인다. 권력을 잡았으니까 그냥 밀어붙이는 거 같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수완을 발휘하지 못하면 차기 지도력도 나타나지 않고 정치가 무능해져 왜소화해진다. 그렇게 되면 권위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파시즘, 나치즘이 그런 거다. DJ(김대중)나 JP(김종필) 때 나쁜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국민을 끌고 가는 힘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그런 걸 볼 수 없다.

△박 교수 = 정치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따라서 지금의 난국, 혼란, 협치의 부재 등에 어느 쪽이 문제인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진 쪽인 여당의 책임이 크다고 봐야 한다. 여당이 먼저 포용하고 아량을 베풀며 야권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가야 할 책무가 있다. 그렇게 덧셈 정치의 의미에서 협치를 한번 해 보면 큰 업적으로 남을 것 같은데, 지금 전선이 너무 짙게 형성돼 있어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장 교수 = 문 대통령만은 역대 모든 대통령이 되풀이한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대의기관(국회)을 지나치고 민의(民意)만 보고 가겠다, 이게 역대 정부들이 해온 문제였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과제 중 하나가 민의의 정치와 대의의 정치를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거다. 지금 이 정부는 여론만 보고 간다는 건데 이것은 민의의 정치라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보수와 진보가 길항적으로 작용하는 정치 토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

△허 선임 = 문 대통령이 자신을 촛불정권, 촛불대통령으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촛불의 요구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지 않나. 문 대통령으로서도 딜레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 교수 = 문 대통령이 비록 촛불의 힘으로 당선됐지만 취임 후엔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거기에 맞추는 게 필요하다. 그러려면 반대 진영과의 협치, 통합, 이런 걸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의) 이미지나 인상을 보면 협치가 어울리는데 그걸 못하는 걸 보니 권력을 잡으면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허 선임 = 이제 토론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제도의 문제도 참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

△박 교수 =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국정 운영과 협치의 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꼭 개헌이 돼야 한다. 사실 문 대통령은 대선 득표율 40%에 여당 국회 의석 40%라는 소수 정권의 한계를 안고 출범하지 않았나. 이는 협치의 제도화가 절실하다는 걸 말해 준다. 혼자서는 안 되니까. 개헌은 물론이고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다당제 기반을 만들고 연정 등 제도적인 협치를 해야 한다.

△장 교수 = 개헌의 명분은 정통성과 효율성이다. 1987년 개헌으로 정통성은 확보했지만 지나고 보니 효율성은 없었다. 효율성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분권을 포함한 다른 차원의 개헌이 필요하다. 정치학 교과서에 ‘To govern means to invent’라는 말이 나온다. ‘통치한다는 것은 발명하는 것’이다. 독일이 2차 대전 후 전 세계적인 성공국가의 사례가 된 이유가 바로 제도적인 발명 때문이다. 비례대표제, 건설적 불신임제, 이런 정치적 발명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고 부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걸 담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

△박 교수 = 개헌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하면 좋겠다. 하나는 다당제 기반 구축, 다른 하나는 민주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장기집권 토대 구축이다. 중국과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최근 일제히 장기집권 체제를 끝냈다. 장기집권 기반 마련은 국정 운영의 연속성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에게는 재계약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 정치엔 낮은 길이 있고 높은 길이 있다. 법치(法治)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둥이지만 낮은 길이다. 예치(禮治)와 덕치(德治)는 높은 길이다. 법치 위에 예치와 덕치를 쌓아야 한다. 그래서 포용과 협치가 중요하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타협할 줄 알아야 국민의 대표인 정치인도 타협할 수 있다.

△장 교수 =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국민 통합 여부에 달려 있다. 정치학자로서 강조하자면 정치의 궁극적인 과제는 국민과 국가의 통합이다. 통합을 어떻게 이룰지를 고민하고 실험하고 실행하는 것이 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박 교수 = 밑바닥이 신통치 않은데 국민 대표만 걸출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다. 국민이 통합의 정신으로 가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무효화의 정치가 설 자리가 없고, 여야가 합의한 정책과 국정 과제가 다음 정부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허 선임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주제에 합당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두 분의 제언이 정치권과 사회 각 분야 지도자들, 그리고 국민의 가슴속에 기억되고 남는 말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오랜 시간 감사드린다.

정리=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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