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기술은 시스템 뒷받침돼야
세계 2~3곳만 보유한 핵심기술
中은 연구소 건립에 13조 투자
美선 560㎞ 네트워크 짓는데
韓 정부-학계‘밥그릇’싸움에
아직 지원여부조차 결론 못내”
“세계 최고의 양자 소자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시스템(네트워크) 구축 등에서 정부의 지원이 따라주지 않으면 ‘말짱 꽝’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에서는 국가 주도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일 광자 검출기 기술은 미국 등을 포함해서 2∼3개 업체만 보유하고 있는 기술인데, 이 상태라면 조만간 중국 등의 국가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매우 커 답답합니다.” 박찬용 ‘우리로’ 기술연구소장은 3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정부 예산에 반영이 안 되면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며 이 같은 울분을 쏟아냈다.
“제 돈도 많이 ‘꼴아박았다’”고도 했다. 우리로는 광주에 있는 양자정보통신 소자 전문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약 400억 원인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기술력은 중소가 아니다. 핵심 기술인 ‘단일 광자 검출기’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단일 광자 검출기는 양자정보통신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으로 광자 한 개를 받아서 수십만 배 증폭한다. 광자를 무더기로 쏘는 일반 통신과 달리 양자정보통신은 광자 한 개를 보내기 때문이다. 신호 세기가 극히 미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증폭해야 한다. 박 소장은 “소자 기술은 시스템에 맞물려 선순환하며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의 시스템 구축 없이는 더 이상 기술 선두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자정보통신은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린다. 양자정보통신 기술은 양자가 가진 중첩·불확정·비가역·얽힘 성질을 이용해 정보통신기술(ICT)의 새로운 차원을 열려는 시도다. 다루기가 매우 어렵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 100만 배 빠른 컴퓨터, 1000배 정밀한 계측이 가능해진다. 양자정보통신 기술에서 뒤처지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이류 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연산 능력이 뒤지면서 4차 산업혁명 핵심인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 경쟁에서 낙오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화학 분석 능력이 떨어지면서 바이오·의약 산업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초정밀 센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상 분석이나 신약 개발을 위해 외국에 양자컴퓨터를 빌리러 다녀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정부가 양자정보통신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바는 아니다. 양자정보통신은 2012년 당시 지식경제부가 ‘정보기술(IT) 10대 핵심 기술’에 선정했고 2014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 전략’을 만들어 지원 토대를 체계화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기술 개발 사업’ 국책 과제가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에 선정돼 심사를 진행했다.
마침 새 정부가 국정 과제에 양자정보통신 기술 산업 육성을 포함하면서 업계의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지원 여부는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눈앞의 경제성만 판단, 산업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부와 학계 내의 ‘밥그릇 싸움’이 겹친 결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계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양자정보통신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이 양자연구소 건립에 2년 반 동안 13조 원을 투입한다는 소식에 국내 양자 업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정부의 지원금은 8년간 중국의 200분의 1도 안 되는 3000억 원 수준이다. 더욱이 중국은 이미 최근 자국 양자통신 위성을 이용해 1200㎞ 떨어진 곳에 ‘얽힘 상태’의 양자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자 얽힘은 양자가 서로 연결돼 있는 성질로 양자가 서로 ‘얽힘 상태’일 때 한 양자에 어떤 정보를 입력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양자에도 동시에 해당 정보가 입력되는 상태다. 얽힘 양자로 전송되는 메시지는 어떤 도·감청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앞으로 7400㎞ 떨어진 중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양자 전송 실험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세계 최초로 양자정보통신 시험망을 구축했으며 2013년부터 나사에서 560㎞ 거리의 양자정보통신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특히 1984년 단일 광자를 활용한 양자정보통신의 기본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등 양자정보통신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보안을 이유로 보유 중인 양자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양자정보통신 기술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의 경우 2016년에 국내 첫 양자정보통신 시험망을 구축하고, 기업 및 관련 기관이 개발한 양자 관련 기술을 실제 상용 망에서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양자암호통신 테스트베드’를 개소했다. 그러나 해외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구간이다. 테스트베드는 경기 성남시와 용인시를 연결하는 120㎞ 구간과 세종에서 시험 환경을 제공 중이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리서치미디어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정보통신 시장은 2020년 6조4108억 원, 2025년 26조8751억 원으로 연평균 22.5%의 빠른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글로벌 시장 규모를 토대로 추정 한 결과 국내 시장은 2020년 707억 원, 2025년 1조4000억 원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허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스마트양자통신센터장)는 “정부의 좀 더 과감한 투자와 국가 산업 발전의 의무가 있는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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