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김연아 기자 y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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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벤처수 3만개 돌파… 신규투자도 3.1% ↑
평균 업력 9년… 초기투자 부족에 절반이 고사
엔젤투자 규모 美 0.5% 수준… 인프라도 부족


벤처산업이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에 힘입어 벤처산업은 2000년 중반 ‘거품’이 빠진 이후로 다시 한 번 외형적 성장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하지만 높은 정책 자금 의존도나 부족한 투자 규모, 기술평가 시스템 부재, 투자 회수 부족 등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기지개 켜는 벤처 = 1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벤처기업 수는 2015년 1월 처음 3만 개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6년 3만3360개를 기록했다. 업종별 분포 비중은 일반제조(48.6%), 첨단제조(21.6%), 소프트웨어·정보통신(17.5%) 순으로 많았다.

특히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만 놓고 보면 전년(2조858억 원) 대비 3.1% 증가한 2조1503억 원을 기록했는데, 바이오·의료 분야가 21.8%,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분야가 18.8%를 각각 차지한 반면, 과거 주력 투자업종이었던 ICT 제조는 4.4%에 불과해 ‘주력 부대’가 교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한 벤처기업 수도 갈수록 늘고 있다. 2016년 기준 513개로, 2005년(78개) 이래로 약 6.6배 증가했다.

벤처 기업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 2015년 벤처기업 매출 합계는 215조9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8.6% 증가했으며, 매출액증가율은 2009년 이후 대기업보다 매년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자리에 대한 기여도도 커지고 있다. 자동화, 국내생산 감소 등으로 대기업의 고용은 감소하는 반면, 벤처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은 지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중소기업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국내 일자리 증가분의 97%(177만 개 창출)를 담당했다. 청년고용성장지수 상위 100개 기업 중 53개 기업이 중소기업이므로 벤처 기업은 청년 일자리 창출도 주도하고 있다.

수출 역시 마찬가지. 지난해 대기업·중견기업 수출은 감소했으나 중소기업 수출은 증가했다. 지난해 전년 동기 대비 수출증감률은 대기업의 경우 8.4%, 중견기업의 경우 5.6% 각각 감소한 반면, 중소기업은 1.8% 늘었다.

또 대한민국 세계 일류 상품(지난해 737개) 중 중소·중견기업 상품은 559개로 76%(중소기업 391개, 중견기업 168개)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생산액은 대기업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상승해 2014년 대기업을 추월했다. 중소기업 부가가치 증가율(전년 대비)은 2012년 0.8%에서 2014년 6.1%로 늘었으나 대기업은 같은 기간 -0.5%에서 -3.3%로 갈수록 떨어졌다.

◇숙제도 적지 않아 = 창업 초기 단계의 투자가 부족한 데다, 높은 정책자금 의존도는 벤처기업 특유의 도전 정신과 역동성을 제약하는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창업 초기가 아니라 후기 기업에 투자가 집중(44.7%)되면서 신규 벤처기업은 일명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지 못한 채 고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현재 벤처기업의 평균 업력은 9년이며, ‘4∼10년’(45.9%)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3년 이하’도 21.3%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벤처기업 신규자금 조달 방법 중 정부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웃돌고 있다. 결국 높은 정책자금 의존도는 수익률 위주·보수적 투자 성향을 유발한다. 세금을 재원으로 투자할 경우 수익률을 높이기보다는 원금 손실을 방지하는 데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업력이 쌓이고 사업성이 검증된 후기단계 벤처기업에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벤처 투자 규모는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규모는 창업 선진국인 이스라엘의 5분의 1 정도다. 초기 투자자(엔젤)의 경우에는 미국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투자 회수를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평가와 재무적 가치 평가가 필수적이지만 국내에는 관련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또 인수·합병(M&A) 비중은 2.2%(2014∼2016년 기준)에 불과해 고질적인 투자 회수 시장의 부재 문제를 낳고 있다. 미국만 해도 같은 기간 M&A 비중은 평균 91.8%에 이르렀다. 결국 투자 회수 수단의 불확실성은 민간 투자자의 참여를 저해하고, 자금 순환의 경직성 등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안정적인 경영권 보장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제도팀장은 “창업 초기 연구개발비 등에 큰 투자가 필요한데, 이때 다른 주주가 배당을 요구하거나 투자자본 등의 적대적 M&A가 시도되면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면서 “구글의 사례처럼 벤처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 등 경영권 방어 수단 마련을 통해 안정적인 창업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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