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과학 / 오드라 J 울프 지음, 김명진·이종민 옮김 / 궁리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그리고 각각의 연합세력들이 세계 패권을 두고 갈등과 경쟁을 계속했던 시기를 ‘냉전 시대’라고 부른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은 막을 내렸지만 그 유산은 아직도 현대의 정치·경제·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책은 냉전 시대의 과학사를 미국의 시각에서 풀어놓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사가인 저자는 비밀 유지 기한이 풀린 정부·기관 자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가권력을 유지하고 투사하는 데 과학기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냉전의 과학사에서 인류에게 가장 극적인 변화를 초래한 것은 원자폭탄과 우주개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첩보가 나오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6월 원자무기를 만들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로 알려진 것이다. 이 프로젝트로 최초의 원자폭탄인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이 완성됐다. 그리고 이 폭탄들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각각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돼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일본이 같은 해 8월 15일 즉시 항복함으로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이는 동시에 ‘원자시대’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폭탄의 엄청난 파괴력에 위기를 느낀 소련이 1949년 8월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미·소 간 군비경쟁이 본격화했다. 뒤이어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첨단 무기 개발이 이어졌다.

달 탐험 같은 우주개발 경쟁도 마찬가지다. 1969년 7월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온 세계는 열광했다. 인류 삶의 영역을 우주로 넓힌 기념비적 사건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미국의 아폴로 달 착륙 프로그램 역시 냉전의 전형이다. 미국이 1958년 나사(미 항공우주국)를 민간기구로 전환하고 1960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 착륙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도 실은 1957년 소련이 먼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기 때문이다. 소련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당시 미국으로선 양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였다.

한때 과학기술은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이끌고, 공공의 선(善)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과학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과학에 덧씌운 환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학만으로 우리가 처한 위기와 갈등을 해결할 수 없으며,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소 간 패권 경쟁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지금 세계에는 또 다른 충돌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경제·군사 대국인 중국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새로운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북핵 문제로 이런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로선 냉전 시기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312쪽, 1만8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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