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은 “승패가 원리인 정치는 시인에게 낯선 세계이지만, 나라의 존폐를 좌우하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력이 무언가를 급하게 이루려 하지 말고 ‘농부의 시간’을 배워서 차분하게 걸어갔으면 한다”고 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김남조 시인은 “승패가 원리인 정치는 시인에게 낯선 세계이지만, 나라의 존폐를 좌우하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력이 무언가를 급하게 이루려 하지 말고 ‘농부의 시간’을 배워서 차분하게 걸어갔으면 한다”고 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자택 터를 부군인 김세중 조각가를 기리는 김세중기념사업회에 기증해 ‘예술의 기쁨’이라는 문화공간이 됐는데.

“이런 거는 사생활에 속해서 생략했으면 하지만, 물어보시니 답하겠습니다. 이 집에서 1955년부터 살았습니다. 7∼8년 전에 서울시로부터 문화재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두 예술가가 50년을 한집에서 살았으니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거예요. 바깥분(김세중 조각가)이 떠나고 그 퇴직금을 안 쓰고 있었는데, 이어령 전 장관 등이 김세중 조각상(賞)을 만들자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32년 동안 조각상을 시상했는데, 어디 후원 같은 것은 받지 않고 해 왔습니다. 정말 좋은 조각가들이 상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만날 장소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술의 기쁨’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이름이 이렇다 보니 커피 파는 카페냐고 하는 분도 있고 해서 김세중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함께 붙인 것이지요.”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조각하는 등 미술가로서 큰 이름을 떨쳤던 김세중 선생이 남편으로서는 어땠습니까.

“통행금지 2분 전에 들어오는 분이었습니다. 월급도 집에 가져오지 않고…. 남편으로서는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떠나고 보니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알겠더군요. 김세중은 전시회를 한 적이 없습니다. 서울대 미대 학장으로 대학 발전에 헌신하고, 후배 미술가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면서 자신의 전시는 뒤로 미룬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강연도 많이 다니고 시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쓴다고 얼마나 바빴습니까. 그분이 무슨 재미로 집에 일찍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나중에야 남자의 외로움을 알게 되면서 그분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된 것이지요.”

그는 가족 이야기를 삼가고 싶어 했으나 자녀들이 세상에서 모두 훌륭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를 드러냈다. 1녀 3남을 뒀는데, 불문학을 공부한 큰딸(김정아)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둘째 아들(김석)이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큰아들까지 모두 세 명의 자녀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셈이다. 막내아들 (김범)은 국내외에서 이름이 높은 설치미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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