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정규 9집 ‘에픽하이’

3년 만에 정규 9집으로 돌아온 그룹 에픽하이(타블로·미쓰라·투컷)의 활약이 눈에 띈다. 아이돌이 점령하다시피 한 요즘 음악 시장에서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23일 처음 공개되자마자 음원이 멜론·지니뮤직 등 각종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하는가 싶더니 2주가 지나도록 정상권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여세를 몰아 3∼4일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쳤다. 데뷔 14년 된 ‘중고참’ 그룹의 롱런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9집 ‘위브 돈 섬싱 원더풀’(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에 있었다. 수록곡 중 ‘노땡큐’가 욕설을 포함한 가사로 ‘여성 혐오’ 등의 논란을 겪었으나 이는 표피적인 문제일 뿐 더블 타이틀 곡 ‘연애소설’과 ‘빈 차’의 힘이 더 커 보였다.

‘연애소설’은 아이유가 피처링한 곡이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아이유의 청아하면서도 성숙한 보컬이 서정적인 가사와 잘 맞아떨어진다. 멤버 투컷은 “아이유는 에픽하이가 선호하는 음색을 가지고 있다.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로 섭외했고 그 결과가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빈 차’는 에픽하이 멤버들이 일제히 꼽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다. “갈 길이 먼데 빈 차가 없네… 처진 어깨엔 오늘의 무게… 갈수록 두려워. 뛰고 있지만 뭘 위해서였는지 잊은 두 발과 심장. 그저 짐이 되어버린 꿈… 이 넓은 세상에 내 자린 없나…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바쁜 사회생활 속에 꿈을 잃은 채 무감각하게 일상에 매몰된 인간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요즘 아이돌 그룹의 분위기나 가사와는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투컷은 “곡을 쓰느라 밤샘작업을 하면 어린 아들이 ‘아빠는 매일 돈만 벌러 나간다’고 투정을 부릴 때가 있다. 벌어야 할 돈 말고 뭐가 더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짠’했던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에픽하이의 롱런 비결은 간단하다. 창작자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그리고 멤버 간의 무한 신뢰.

2003년 1집 ‘맵 오브 더 휴먼 소울’(Map Of The Human Soul)로 데뷔한 에픽하이는 ‘서사적 높음’(Epic+High)이라는 그룹명처럼 서사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가사로 사랑받았다. 특히 힙합과 얼터너티브를 바탕으로 장르를 결합하고,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해 매번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14년 전 20대 초반이었던 이들은 어느새 평균 연령 35.7세의 ‘유부남’ 그룹이 됐다. 이제 그들도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빠이고 ‘아재’(아저씨)다. 그들은 나이 먹는 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노래를 발표하려면 손쉬운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내야 한다는 우직한 고집을 지켰다. 리더 타블로는 “30대 중·후반에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20대 때와는 또 다른 엄청난 무게가 느껴진다”면서 “애써 젊게 보이려고 감추거나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려 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한 곡 한 곡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보다 새롭고 젊은 가수들이 주도하는 가요 시장에서 이렇게 좋게 들어주시니 ‘축복’받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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